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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포쉬(POSH)', 침묵의 카르텔 그 찜찜함에 대하여

  • 입력 2023.05.07 10:30
  • 수정 2023.05.07 11:12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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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영국 상류 카르텔을 고발한 연극 포쉬가 공연 중이다. 실컷 욕이라도 퍼부어주면 좀 시원하겠건만, 닿지도 않을 욕 한마디로 치워버리기엔 찜찜하기 짝이 없다.

연극 포쉬(POSH)(제작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프로듀서 김수로)’는 영국 극작가 로라 웨이드(Laura Wade)가 쓴 작품이다. 2010년 런던에서 초연돼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2014년 영화 라이엇 클럽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작품은 세계적인 명문 영국 옥스퍼드 최상위 엘리트들의 비밀 사교 모임 라이엇 클럽(The Riot Club)’의 행태를 담고 있는데, 실제 옥스퍼드 출신 사교 모임 벌링턴 클럽(Bullingdon Club)’의 신입생 환영회에서 벌어진 일화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POSH’는 고급스러운, 화려한, 호화로운 등의 사전적 의미를 지닌 말로 상류층 취향의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통칭해 뜻한다.

작품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영국은 오늘날에도 왕족 이하 귀족이 존재하고 귀족 중에도 5계급이 나뉘는 등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귀족문화가 팽배하다. 그를 대표하는 것이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라 할 수 있는데, 애초 헨리 6세가 재능은 있으나 가난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학비를 지원할 목적의 학교를 설립했으나 수백 년이 흘러 현재는 상류 계급 중에도 돈 많은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학교로 변모했다. 이 이튼 칼리지를 거친 상당수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진학하고, 이들에게는 대학 진학조차 가족이 이 학교 출신이면 우선순위를 줄 정도로 영국은 사회 전반에 서열과 귀족문화가 뿌리 깊다.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연극 포쉬에 등장하는 라이엇 클럽은 그러한 상류층 중에도 단 10명의 옥스퍼드 상위 1%라는 최고 엘리트들의 천박한 세계관을 통해 고고한 신사의 나라 영국이 으쓱하는 귀족문화를 풍자한다. ‘라이엇 클럽멤버들은 학교에서 먼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여 기껏 돈으로 체면을 차리며 온갖 진상과 행패를 부리는데, 그마저도 상류층인 자신들이 왜 매번 중산층 서민들에게 과도한(쓸데없는) 예를 차려야 하는지 분노에 이르더니 급기야 레스토랑 사장을 폭행해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사태 해결에 서로의 이해 충돌은 극명했으나 ‘POSH’라는 카르텔은 굳건했다. 그들은 여전히 영국을 이끄는 상류층이며, 실제 벌링턴 클럽의 멤버 중에는 영국 총리를 지낸 이도 있다.

여기서 특히 연극 포쉬를 눈여겨볼 점은, 상류 카르텔의 진화 과정에 침묵의 카르텔(사회 집단이나 이해 집단에서 특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집단의 구성원이 그에 침묵하고 외면하여 사안이 은폐되는 사회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묵의 카르텔은 사회적 신분이나 집단의 규모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있다.

극 중 라이엇 클럽은 수년 전에도 학교 인근에서 모임을 했다가 가게를 박살 낸 전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교육기관인 학교가 이들에게 단지 학교 반경 25Km 안 모임을 금지하는 징계로 무마했다. 해서 멀리까지 원정을 온 것인데, 제 버릇 개 못 주고 급기야 이번엔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신고까지 한 마당에 피할 길은 없다. 이들은 결국 멤버 한 명에게 독박을 씌운다. 그렇다고 그 한 명이라도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어림없다. 그 역시 ‘POSH’. ‘내가 살아야 너도 산다’, 그렇게 카르텔은 공고해졌다. 차기 회장에 미끄러질 듯했던 한 멤버는 이 사건에 변호사인 삼촌 찬스를 활용하면서 기어이 회장이 됐다.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연극 '포쉬' 공연 스틸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평범한 이들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단적으로 지금도 종종 시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지적 장애 여성 집단 성폭력 피해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마을 전체가 쉬쉬하는 분위기를 볼 수 있는데, 특히 이 사례의 고약한 점은 오랜 시간 알면서도 침묵하다 알려지고 나면 피해자나 고발자(신고자)를 탓하며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최근 방송된 궁금한 이야기 Y’의 사례에서는 심지어 인근 주민이 “(지적 장애 여성인 피해자를) 누가 안 건드려 주면 누가 (육체적으로) 사랑해주겠느냐라는 괴변이 참 아무렇지 않다. 그들이 피해자보다 더 가진 것이라곤 끽해야 '멀쩡한 뇌세포' 뿐인데 말이다.

이렇듯 집단의 규모가 작고 폐쇄적일수록 침묵의 카르텔은 광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는 꾀하는 득이 다를 뿐 학교, 직장, 이웃, 종교, 정치, 경제 등 사회 곳곳에 이루 다 셀 수 없이 존재한다. 비단 작은 시골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러할 진데 그 이유가 기득권 유지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더 할 말이 있을까.

연극 포쉬로 인한 허탈감은 그들이 여전히 같은 지위를 누린다는 것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여야 하는데 더 글로리모범택시같은 통쾌함이 없으니 더 그렇다. 그래도 이 작품을 보며 이런 XXX욕이 절로 난다면 셀프 칭찬(?) 한마디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러함에도, 개인이 사회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 나와 우리 사회가 더불어 건강해야 할 이유. 그것이 마냥 저 세상 이야기 같은 연극 포쉬의 찜찜함이 아닐까. 곱씹을수록연극 '포쉬'는 꼭 한번 추천할 작품이다.

한편, 연극 포쉬(POSH)’는 이달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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