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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서울예술단 '순신', 노래+대사 없는 이순신..총체극으로 설득할까

  • 입력 2023.09.22 08:39
  • 수정 2023.09.22 08:53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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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그린 판소리 적벽가가 있는데 이순신의 해전을 다룬 판소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자람 씨와 이순신의 많은 해전, 멋진 작전을 판소리가 가미된 뮤지컬로 만들어보자 생각했고, 그게 8년 전이었어요. 결국은 무산됐는데, 이유리 이사장님이 그 기획을 알고 있었고, 이번에 순신제안을 주셔서 연락을 받자마자 이자람 씨에게 연락해 작업을 시작했어요.” 서울예술단의 신작 순신의 탄생 배경이다.

서울예술단 신작 순신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남긴 난중일기40여 개의 꿈을 모티브로, 역사적인 사건과 엮어 용맹한 장수이자 충직한 신하이며, 효심 깊은 아들이자 가슴 따뜻한 아버지로서 끊임없이 고뇌한 인간 이순신의 이야기를 담는다. ‘잃어버린 얼굴 1895’, ‘바람의 나라’, ‘나빌레라등으로 서울예술단과 인연이 깊은 이지나 연출과 뮤지컬 서편제(이지나 연출)’의 전신과도 같은 국악인 이자람이 함께한다. 김문정 음악 감독이 작곡으로, 극작은 김선미 작가가 이지나·이자람과 공동 참여한다. 이자람은 판소리 작창을 맡아 극 중 직접 판소리 장면에 등장할 예정이다. 여기에 뮤지컬 웃는 남자’ ‘데스노트등에서 뛰어난 무대미술을 보여준 오필영 디자이너가 무대미술 디렉터로 참여하고 심새인, 정보경이 공동 안무를 맡는다.

서울예술단의 작품은 크게는 뮤지컬 형식이면서 특유의 가무극이라는 장르로 선보였는데, 이번 순신은 가무극이자 총체극을 표방했다. 뮤지컬, 무용, 판소리 등이 어우러져 기존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장르의 융복합이라는 설명이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의 꿈에 주목해 주요 전투 장면은 판소리로, 서사는 현대적인 음악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총체극 순신에서의 이순신은 상징적 존재로 표현하고자 서울예술단 무용수 형남희에게 맡겼다. 무용수의 몸짓으로만 이순신을 표현한다는 소린데, 노래는 아예 없고 대사만 몇 마디 있다는 정도의 뮤지컬 주인공을 관객이 수긍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궁화홀에서 서울예술단 순신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지나 연출은 작품에 대해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꿈을 많이 꾼 사람이다. 예지몽은 물론 꿈에 고통과 희로애락이 농축돼 있는데, 참 흥미롭더라. 그 꿈을 해석하고 엮어보자 싶었다. 고통의 극한이 인간을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조선을 구할 수 있었는지 등 그의 내면을 신체(무용)와 판소리가 가진 애절함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꿈을 통해 그가 초인적으로 이겨낸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 모든 장르가 융복합된 총체극이다. 그래도 작품이 뮤지컬이어서 실제 역사에 허구를 첨가해 좀 더 쉽게 만들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게 무대예술로 어떻게 장르적 차별화를 줄까 고민했다. 영화처럼 CG나 편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순신'만의 힘을 찾으려 했다. 이순신의 정신적, 육체적 표현은 직접적으로, 몸으로 표현하고, 대사는 몇 마디 되지 않는다. (이순신의) 대사나 노래는 무인(이자람, 윤제원 분)이나 코러스가 전달할 것이고, 그 외 대사와 노래는 순신의 아들과 어머니, 선조 등이 표현할 것이라고 전했다.

무용수 형남희가 이순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대신 5명으로 구성된 코러스가 이순신의 분신으로 그의 심리를 대사와 노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지나 연출의 단골 연출 방식이기도 하다. 그의 주요 작품에 빠지지 않는 것이 관념(분신) 캐릭터다.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식이다. 최근 공연 중인 곤 투모로우역시 고종이 등장하는 신에서는 앙상블 배우들이 혼란과 불안정을 표현한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이지나 연출은 앞서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선보인 바도 있다. 당시 세계적인 발레리나 김주원이 참여했고, 여기서도 김주원은 몸으로만 표현하고 코러스(앙상블)를 세웠다.

하여, 이지나 연출의 특징을 아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빤할 수 있을느낌인데, 그렇다고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그 자체로 관객을 설득했었느냐에는 물음표가 남아있다. 또한, 행사 후 여담으로 ‘순신이 이지나 연출의 바람의 나라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는 귀띔이 있었다. '바람의 나라'도 이지나 연출 특유의 미장센이 강조된 작품이다.

이지나 연출은 “‘순신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과 그렇게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관객 숫자가 얼마를 겨냥하는 것이냐가 대중성이라고 하는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소극장 공연이어서 굉장히 마니아틱한 공연이었고, 이번에는 100회 공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용을 많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블루스퀘어 공연이라면 이런 방식이 아닐 것이라며 이번 순신은 다른 관객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할까. 순수 예술과 대중성의 접점일 것으로 생각한다. 해서 예상 관객층을 고려해 어떻게 순수 예술성을 적당히 버무려서 내놓을 것이냐. 현실적으로 무용을 전면에 내세우면 관객이 줄어든다. ‘다들 따로 노네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실망과 난해함을 드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서울예술단은 굳이 왜 신작으로 총체극을 들고 나왔을까. 이는 뮤지컬 단원과 무용 단원이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서울예술단 특유의 구조에 있다. 뮤지컬 형태의 가무극이 많을수록 무용단원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어 단원들의 반발이 컸고, 이는 나아가 서울예술단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서 서울예술단은 지난해 10월 뮤지컬 단원들로만 금란방, 무용 단원들로만 잠시, 놀다를 동시 선보인 바 있고, 이 시도는 호평받기도 했다. 이번 순신은 아예 뮤지컬 단원과 무용 단원을 한 작품에서 동시에 주요 인물군으로 배치해보겠다는 시도로도 읽을 수 있다.

이유리 이사장은 서울예술단은 종합 장르를 표현하면서 독창성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는 생존의 문제다. 해서 신작 개발에 고민이 매우 컸고, 매출 중심의 비즈니스를 해야 할 민간 시장에서 개발하기 힘든 예술적 표현이나 도전을 서울예술단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라면서 이번 순신은 그동안 서울예술단이 추구해온 한국적 소재의 뮤지컬이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대본을 보면 드라마가 명확히 있고, 드라마 속 인물들이 기존 뮤지컬과 같이 노래로 감정을 표현한다. 이번에는 판소리나 무용 요소를 배우의 내면 표현에 더 직접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총체극이 될 것이다. 무용극인가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관객이 볼 때는 전과 같은 서울예술단의 한국적 뮤지컬일 것이고, ‘뮤지컬의 또 다른 양식이구나하고 보실 수 있을 것이다. 극에 등장하는 러브스토리와 넘버는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극의 서술자 격인 무인 역은 이자람과 서울예술단 단원 윤제원이 맡는다. 이순신의 3대 해전(한산도 대첩·명량 해전·노량 해전) 장면을 소리로 묘사할 예정이다. 이에 이자람은 임진왜란과 한산 대첩까지 멋진 곡이 나왔다고 자부한다. 각 전쟁의 콘셉트가 다른데, 한산이나 명량은 '적벽대전'을 참고한 게 맞다. 그에 견줄 수 있는 대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다만 관객이 판소리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어서 판소리를 덜어내고 가극단과 함께할 수 있는 합창이나 노래를 주고받는다거나 코러스 위에 제가 연기를 한다거나, 대전은 그렇게 표현될 것이라며 처음엔 대본을 확인하면서 전통 판소리 어법에 맞게 곡을 만들고 이후 다시금 이 판소리를 컨템퍼러리한 소리로 구성을 짜고, 그런 식으로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하며 편곡을 거쳐 나오게 된다. ‘이게 서울예술단과 이자람이 하는 판소리구나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대목에서 이지나 연출은 판소리는 판소리다. 판소리는 1인이 하는 것이다. 판소리의 매력을 해야지 미디어아트 필요 없다. 이자람이 판소리를 하는데 왜 미디어아트가 난리를 쳐야 하나. 이자람이 노래를 하면 전쟁이 그려져야 한다. 해서 이 대목은 판소리를 들으세요!’라고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이자람, 김문정 감독 등이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김문정 감독은 판소리만 들으면 판소리다. ‘그 뒤에 유기적인 음악을 같이 만들어라’, 그게 저희가 하는 작업이다. 이 작품이 그래서 뭐냐, 그것을 저희도 모르면서 작업하고 있고 그래서 재밌는 것 같다. 이자람 씨와 먼저 작업한 부분을 주셨을 때 우리는 라이브와 피아노로 할 수 있겠다고 열어놓는 부분도 있다. 뮤지컬을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기존 뮤지컬과 다른 뮤지컬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관객에게 이런 예술 장르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 점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수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러한 혼선은 현재 '순신'이  '퍼즐을 맞춰가는 단계'여서 그렇다고 한다. 대본, 판소리, 음악, 무대 등 각각의 분야는 모두 완성된 상태이고, 이를 전체 퍼즐로 구성하며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배우들은 이미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고. 

더불어,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떠올리면 단연 거북선이 연상되는데, 총체극 순신에서는 이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대는 이순신의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고통의 동굴로 표현되는 20m 깊이의 구조물과 9대의 프로젝터를 이용한 프로젝션 매핑을 활용한다.

오필영 디자이너는 이순신 하면 거북선이나 (광화문 동상처럼)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가장 먼저 상상할 텐데, ‘순신에서는 조금 더 독창적이거나 특별한 모습이 될 것이다. 관객의 상상을 제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배는 한 척도 나오지 않는다.”라면서 “‘고통의 동굴이라는 정서적 공간을 만들었고 20m 안에 고통을 가진 구조물을 만들었고, 9대의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정서적 표현을 디자인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이유리 이사장은 전통을 기반으로 미래지향적인 장르를 계속 실험하는 것이 서울예술단의 예술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창작진들의 새로운 도전으로 만들어질 이번 신작이 공연계에 새로운 양식의 단서를 마련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바람과 함께 성원을 당부했다.

한편, 서울예술단 신작 순신117()부터 1126()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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