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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인태, 베토벤의 인간적 고뇌..뮤지컬 '루드윅'에 이른 가시밭길

  • 입력 2023.01.25 10:41
  • 수정 2023.01.30 09:42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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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너무 부담됐죠. 매일 악몽을 꿨어요. 연습에서 대사 한마디를 못 하겠더라고요.”

악성(樂聖) 베토벤(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한 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에서 주인공 루드윅으로 출연 중인 백인태가 최근 연예투데이뉴스와 인터뷰로 만났다.

뮤지컬 루드윅은 말년의 베토벤이 한 통의 편지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허구를 가미한 촘촘한 구성으로 베토벤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한 작품이다. 모차르트를 향한 동경과 질투 사이에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하는 베토벤을 담고 있다. 또한, 베토벤의 음악이 넘버와 배경 음악으로 등장하는 등 초연부터 사랑받아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특히 이 버전은 디벨롭 예정으로 올해 마지막을 예고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사이즈를 키우면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밀도는 어려울 것이어서 이번 시즌은 꼭 한 번 추천할 만하다.

백인태는 추정화 연출의 은밀하게 위대하게:THE LAST’에서 주인공 원류한으로 2020년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시즌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일시 폐관을 결정하면서 불과 15일 만에 막을 내렸으나 절치부심 끝에 지난해 5월 돌아온 시즌에서 마침내 뮤지컬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키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장보고를 소재로 한 신작 뮤지컬 오션스(쇼케이스)’에 이어 이번 루드윅까지 추정화 연출 작품에 줄곧 출연 중이다.

특히 추정화 작/연출의 비교적 최근 작품(스모크, 인터뷰, 블루레인, 프리다 등)은 캐릭터의 감정을 극한으로 몰아치기로 유명한데, ‘루드윅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루드윅은 청력을 잃은 후에도 역작을 쏟아낸 베토벤의 삶과 인간적인 고뇌를 담은 만큼 러닝타임 내내 폭발하듯 토해내는 배우들의 열연과 시너지가 최고의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성악과 출신인 만큼 시원한 가창은 뮤지컬 배우로서도 특장점이다. 그러나 진폭이 넓은 감정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루드윅의 베토벤은 전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었다. 추 연출을 믿고 일단 출연은 결정했는데 이후 대본을 보고 망연자실했다는 그다.

아니 저를 왜 이렇게 점점 가시밭길로 데려가시는지..(웃음), '오션스’ 장보고도 중간중간 잠깐 나오는 신도 어렵다 했는데, ‘루드윅해보겠냐 하실 때 오션스보다 어려우면 저는 안 하겠습니다했어요. 그랬더니 무슨 소리야, ‘오션스가 더 어려웠지하시더라고요. 제가 뮤지컬을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작품을 모르던 상태였는데, 이후에 주변에서 얘기를 들으니까 이 작품 세다. 그런데 저는 이미 하겠다고 했고. 진짜 한다고 했으니까 했지, 만약 대본을 먼저 봤으면 못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정말로 대사 한마디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러나 이번 루드윅은 성공적인 도전이 됐다. ‘루드윅은 치열한 감정연기만큼이나 강렬한 넘버들이 즐비해서 그 둘을 모두 겸비하지 않고는 호평이 쉽지 않은 작품인데, 뮤지컬 배우로는 신인임에도 결국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추 연출의 선구안일지, 백인태의 보답일지, 어쨌든 이번 루드윅까지도 윈-윈 중이다.

지금 제 대본이 그냥 너덜너덜해요(웃음). 원래 공연이 일단 올라가면 그걸 계속하면서 익어지는 건데, 이번 루드윅은 공연 가기 전까지 계속 대본을 보거든요. 굉장히 많이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사실 저는 아직 경력도 없고 잃을 게 없는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뭔가 잃을 게 있을 때 선택이 신중해지는 건데, 오히려 이럴 때 이런 작품을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사실 해요. 아마 저에게 아주 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뮤지컬 루드윅은 배우 김주호, 정의욱, 이주광 등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초연의 베토벤을 맡아 성공적인 시즌을 이끌었다. 이후 김주호는 매 시즌 베토벤을 연기하면서 루드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비교 대상이 너무나 명확한 캐릭터, 게다가 무려 베토벤을 연기한다는 것이 부담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너무 부담됐죠. 매일 악몽을 꿨어요. 가서 연기 못하고 엄청 욕먹고 있는(웃음). 짧게 나눠서 총 4막이라고 보면, 어린 카를이 나오는 신부터 3막이라고 생각하는데, 3막부터 한마디를 못 하겠더라고요. 2막까지는 주로 독백 같은 거여서, 제가 실제 그 나이는 아니어도 극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독백은 할 수 있었는데 막상 대화를 못 하겠는 거예요. 그 나이에 귀가 안 들리는 음악가, 자신도 힘들었던 아버지의 사랑과 강요, (조카에게) 그런 변질된 사랑을 주고 있는 복합적인 사람. 진짜 표현을 못 하겠더라고요.”

어떻게든 해법을 찾기 위해 루드윅장인 김주호와 붙어살았다고 한다. 김주호는 백인태의 연습에 매번 찾아와 모니터링을 해주었을 정도로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김주호의 연기를 볼 때면 벽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결국, 답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사진=김주호
사진=김주호

주호 형이랑 매일 붙어 다녔어요. 형이 계속 공연이 많았는데도 제가 연습하는 날은 꼭 와서 봐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형이 하는 걸 자주 봤는데, 그러니까 더 어렵더라고요. 누가 잘하는 걸 보면 나도 저렇게 해야 할 것 같고. 너무 빈틈이 없으니까. 연출님한테 무릎을 몇 번 꿇었어요. 그만하게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연출님은 믿는다고 하시는데, 개막 3, 2주 전까지도 그 상태였거든요. 그러다 하루는 연출님이 넌 살면서 힘들었던 적이 언제였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가만 생각하니까 저도 학창시절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거든요. 제 감정이 컨트롤이 안 되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 스트레스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접근하다 보니 조금씩 말이 나오더라고요. 공연하면서 별로 떨지도 않는데, 이번 루드윅은 첫 공연 끝나고 막 눈물이 날 것 같은 거예요. 연출님이랑 병진 형님이(안무가 김병진) 진짜 고생 많았다고, ‘누가 뭐라고 얘기하든 네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진정성을 봤다. 우리는 박수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죠.”

팬텀싱어결승전을 마치고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건만, ‘루드윅커튼콜에 앞서 요동친 마음을 관객에게 보이고 싶진 않아 손부채질까지 하며 다급하게 가라앉혔다고 한다. 울컥 올라온 당시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뭔가를 해냈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왜냐면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더 많은 걸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절대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쳐다볼 수 있게 됐을 때, 그 희망 때문에 눈물이 난 게 아닐까. 물론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요. 손으로 막 말렸어요(웃음). ‘루드윅을 보러 온 분들 앞에서 제 개인의 눈물을 보인다는 게 좀 별로였어요. ‘듀에토공연이면 다 저희를 보러오신 분들이니까 그나마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데, 뮤지컬은 그게 아니니까. ‘루드윅을 보신 감정만 가져가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보통 극의 주인공은 작품을 이끄는 인물이니 분량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루드윅의 루드윅은 분량이 많아서만 힘든 작품이 아니다. 등장 이후 줄곧 무대에 머무는 루드윅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지켜보다 어느 순간 그 바통을 받아 말년의 자신을 연기하게 된다. 하여 청년 루드윅, 마리 등과 유기적인 호흡을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휘몰아치는 매 신의 감정의 깊이를 이끌어주는 이도 다름 아닌 루드윅이다. 여기서 누구 하나 과하거나 모자라면 신의 감정이 흐트러질 수 있다. 그러니 모든 배우가 고르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완전한 앙상블을 만들어내기도 힘든 작품이 바로 루드윅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원류환(은밀하게 위대하게)도 장보고(오션스)도 이 정도로 감정이 세게 부딪히진 않았거든요. 그러다 루드윅에 왔는데, 캐릭터마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서로의 시선이 굉장히 뚜렷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거기다 루드윅의 그 공허한 외침은 엄청 뜨거운데 보이는 모습은 부딪히지만, 생각은 부딪히지 못하고. 이런 작품이 저는 처음인 거예요. 추정화 연출님의 작품은 누가 주인공이라고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캐릭터 분량도 비슷하고 각 캐릭터의 힘도 균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균등한 와중에 100% 극을 끌고 가야 하는 게 또 루드윅인 거예요. 사실 저는 누가 끌고 가면 같이 손잡고 가야 할 사람인데, 대학로에서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계속 끌고 가야 하니까. 안 그러면 굴러가질 않게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그게 너무 힘들었죠.”

뮤지컬 루드윅속 루드윅(베토벤)은 어떤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백인태 역시 클래식 전공자이기에 베토벤이 겪었을 훈련 과정의 지긋지긋한동질감은 매우 높다. 오히려 그렇기에 음악가의 모습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하고자 했다고 한다.

발성 연습을 하다가 안 되면 피아노를 부수고 싶고 막 그랬어요(웃음). 왜 난 안 될까. 진짜 막 소리 소리지르고, 옆에서 수업 있다는데 안 간다고. 내가 당장 안 되는데. 저도 그런 시간이 많았죠. 그래서 그런 동질감은 너무 커요. 그게 오히려 너무 깊어서 쳐다보기 싫을 때도 있었어요. 내가 한 것도 지긋지긋한데 어려서부터 폭력을 당하면서도 종일 연주를 했다는 게. 사실 귀가 안 들리는 것도 아마 어려서 많이 맞은 영향도 있지 않을까. 제가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까불다가 알코올을 만졌는데 왜 먼저 만졌다고 선생님에게 뺨을 맞아서 저 벽까지 날아간 적이 있어요. 그거 한 대 맞았는데 한 일주일 귀에서 윙윙거리더라고요. 그 충격이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그런데 베토벤은 거의 매일 맞았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막 화가 나더라고요. 그런 과정에서도 후대에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꼽히는 인물이 됐다는 건, 베토벤이라는 인물의 깊이는 저 같은 사람이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깊은 사람도 한 인간일 것이고, 개인적인 아픔과 결핍이 있을 것이어서,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사실 제가 그중에 하나만 제대로 보여드려도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베토벤의 음악도 중간중간 나오는데, 그런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대비되는 한 인간의 쓸쓸함, 그런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백인태하면 팬텀싱어를 빼놓을 수 없다. 대중적인 유명세를 주었고 그에 힘입어 뮤지컬 데뷔의 발판이 됐다. 2016년 방송을 시작해 20171월에 종영했으니 벌써 5~6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백인태를 포함한 대부분의 홍보 자료에는 여전히 팬텀싱어결승 진출자라는 소개가 빠지지 않는다. 여러 활동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면서 특히 최근 들어 팬텀싱어를 통해 만난 오랜 팬들을 비롯한 지인들에게서 차츰 배우로 인정해주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아가 뮤지컬 무대를 통해 새로운 팬이 늘어가는 것도 감사한 요즘이다. 배우로서는 지금 당장 눈앞의 한 발을 무사히 디뎌내는 것이 목표다.

“‘팬텀싱어 출신’, 그런 수식어는 당장 저의 걱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통해 듀에토나 배우 활동을 하는 것도 맞고 개인적으로 되게 행복한 과거여서, 앞으로 저만 잘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활동이 꾸준히 쌓이다 보면 그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겠죠.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우선 감투는 먼저 써버렸거든요. 감투를 썼으면 그에 맞는 인품과 업적이 잘 갖춰져야 하듯이 저도 배우로서는 좋은 연기와 극에 맞는 노래, 그런 것들을 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사실 지금 배부른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작품을 할 때마다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을 받아요. 떨어지면 끝이다. 한 인터뷰에서도 얘기했는데, 줄 위에서 당장 뛰고 날 수는 없지만, 우선은 넘어지지 않고 이 줄을 끝까지 가자는 것이 작품을 할 때마다 제 마음이거든요. 저는 갑자기 배우가 된 사람이기 때문에, 뭘 멀리 보고 어떤 배우가 되겠다그런 마음보다 당장 내 앞의 한 발 한 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집중할 거고,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어떤 모습의 어떤 나로 새롭게 불리는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배우로)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그건 정말 감사하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작년에 은위했을 때, ‘이제 뮤지컬 배우 같더라하시고, 그리고 팬이 아니었던 분들에게서 편지가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작품을 보고 팬이 됐습니다’, 그분들이 다음 공연에 와주시고. 사실 공연 끝나고 뵙는 분들 원래 다 아는 분들이었는데(웃음), 언젠가부터 차츰 모르는 분들이 늘더라고요. 감사할 따름이죠. 그렇다고 그런 반응이 저를 달라지게 하진 않아요. 오히려 굉장히 조심하고 있어요. 거기에 빠져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그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고요, 감사한 마음만은 진짜, 엄청 큽니다(웃음). 진짜 감사합니다.”

끝으로 뮤지컬 루드윅예비 관객에게 자신의 루드윅의 매력을 꼽아달라 하니 노래는 잘할 것이라고 겸손을 떨어 웃음을 자아냈는데, 백인태의 루드윅의 포인트를 귀띔하자면 처연한 광기. 감정도 보컬도 어째 과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데, 보고 있자면 한구석 쓸쓸하다.

저의 베토벤은 정말 대본에 두들겨 맞았거든요. 그래서 지금 한 마디라도 극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 거장의 결핍, 그의 외로움을, 시간이 갈수록 더 진솔하게 보여드릴 테니까, 베토벤과 베토벤의 음악이 있는 뮤지컬 루드윅’, 꼭 보러오시면 좋겠어요. .. 저는 일단 노래는 잘할 겁니다(웃음).”

한편, 뮤지컬 루드윅은 오는 312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재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공연사진 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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