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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획①] 뮤지컬 '베토벤:Beethoven Secret', 그래서 '시크릿'은 어디에 있나

  • 입력 2023.02.14 12:52
  • 수정 2023.02.23 12:28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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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스타 창작진, 호화 캐스팅, 수백억 원의 제작비, 대형 공연 제작사 EMK,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이자 위대한 음악가 악성(樂聖) 베토벤, 그리고 그의 불멸의 연인’. 뮤지컬 베토벤은 그 면면만으로도 2023년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막상 베일을 벗은 뮤지컬 베토벤은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뮤지컬 베토벤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의 신작이자, 다섯 번째 오리지널 작품이다. 작품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음악과 사랑을 소재로, ‘엘리자벳’, ‘레베카’, ‘모차르트!’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극작가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 콤비와 7년의 개발 끝에 최근 초연의 막을 올렸다. 독일의 스타급 뮤지컬 연출가 길버트 매머트를 모셔올 정도로 세계에 통할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작품의 풀네임은 베토벤:Beethoven Secret’이다. 실제 베토벤의 유품에서 발견된 한 여인을 향한 연서 불멸의 편지를 근거로 제작됐다. 편지 속 주인공인 불멸의 연인에 실제 유력한 인물 안토니 브렌타노와의 사랑을 조명한다. 음악은 모두 베토벤의 주옥같은 명곡들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박효신, 박은태, 카이, 조정은, 옥주현, 윤공주 등 화려한 캐스팅이 초연의 무대를 책임진다.

하나하나 실패란 있을 수 없는 면면이다. 그런데 왜 뮤지컬 베토벤은 평단과 관객들에게서 냉혹한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을까.

정작 비밀은 없는 베토벤 시크릿(Beethoven Secret)’

최근 뮤지컬 베토벤의 보도자료에는 작품에 관해 베토벤의 사후, 그의 유품 중에서 발견된 불멸의 연인(Unsterbliche Geliebte)에게 쓴 편지에서 출발한 뮤지컬 베토벤1810년부터 1812년을 배경으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청력 상실의 위기를 맞은 40대의 베토벤이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나며 모든 경계와 제약에서 벗어나 내면에서 끌어올린 음악을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고 쓰였다.

이 말대로라면 참 그럴듯하다. 그런데, 뮤지컬 베토벤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모든 경계와 제약에서 벗어나 내면에서 끌어올린 음악을 만들어내는 베토벤의 모습이 없다.

뮤지컬 베토벤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 가장 큰 불호(不好)’ 포인트가 바로 청력을 상실한 와중에도 역작을 쏟아낸 베토벤을 조명한 작품일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만 하다가 갑자기 죽더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과 유부녀 안토니 브렌타노의 만남, 사랑으로 1, 2막 대부분을 끌고 간다. 게다가 충분한 서사 없이 불륜을 극복이나 성장의 가치로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싸늘한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자 이후 프레스콜을 비롯해 각종 홍보에서 뮤지컬 베토벤의 원제가 베토벤 시크릿(Beethoven Secret)’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뮤지컬 베토벤은 애초 대중이 기대했을 베토벤의 삶과 음악적 고뇌를 담은 이야기가 아닌 베토벤의 비밀’, 즉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과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안토니 브렌타노여서, 베토벤의 음악에 안토니 브렌타노와의 사랑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상상을 풀어놓은 작품이라는 것.

안토니와의 사랑은 실제 역사이기도 한 만큼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끝내 이 사랑은 베토벤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사생활이 문란한 여성을 집안에 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동생들의 결혼을 극도로 반대했던 만큼 자신 역시 유부녀와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어선 안 된다는 판단이었을 수 있다. 더욱이 베토벤은 그녀의 남편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 판단일 뿐, (‘불멸의 연인이 안토니라는 가정하에) 차마 부치지 않은 편지를 평생 간직할 정도로 그녀를 향한 사랑만은 진심이어서, 그것이 향후 베토벤의 음악에 어떻게’, ‘어떤 식의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이 보태졌다면 베토벤 시크릿(Beethoven Secret)’이라는 제목에도 나름 그럴듯했을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 베토벤은 정작 그 알맹이가 쏙 빠진 채 베토벤과 안토니의 거듭된 만남과 이별을 보여주다가 그의 음악에 안토니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의미로 딱 한 마디 대사가 등장한다.

이제부터 내 음악도 달라질 거예요. 밝고 희망차고 기쁨이 넘치는 음악이요!”

2막 중후반에야 베토벤에게서 이 대사가 나온다. 드디어, 이제라도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지려나 했더니 안토니 남편 동생 베티나의 발설(?)로 둘은 끝내 이별에 이른다. 그러자 베토벤이 다시 노래한다.

고통도 절망도 날 막지 못해, 자유 그것이 나의 운명.”

그리고 피날레다. 뭐 이런 맹탕이 있나 싶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홍보에서 빠지지 않는 불멸의 편지불멸의 연인에 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없다. ‘합창(교향곡 94악장)’을 가져온 피날레 가사에 불멸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뿐이다. 사전에 작품 정보를 모르면 이 작품이 베토벤의 불멸의 편지과 관련이 있다는 자체를 알기도 어렵다. 물론 알고 봐도 허술하긴 매한가진데(어쩌면 알고 보는 게 더 허망할 듯하긴 하다.), 워낙 떠들썩하게 홍보한 통에 흡사 폐허가 된 극장 경매에 나온 원숭이 오르골에서 출발하는 신비로운 판타지 오페라의 유령급으로 빠진 작품일까 내심 기대했다가 대차게 헛물만 켰다검색만 해봐도 예측 가능할 법한 이렇듯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무슨 비밀씩이나 된다고 시크릿(Secret)’이라는 이름을 달았다는 걸까.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베토벤의 불멸의 편지에서 출발했다는 뮤지컬 베토벤의 제작 소식에 아무래도 영화 불멸의 연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 게리 올드만이 베토벤으로 출연한 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 사망 후 그의 비서가 베토벤의 유서를 발견하면서 유서의 주인공인 불멸의 연인을 찾는 추리 여정을 담고 있다. 베토벤의 과거 연인들과 베토벤의 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이자 후원자 안나 마리 에르도디, 동생 카스파의 부인 요한나 등이 등장하는데, 그 추리 과정에서 베토벤의 명곡 탄생 배경과 유명한 일화들이 그의 음악과 교차하는 구조가 매우 흥미롭다. 특히 귀차르디가 몰래 지켜보는 가운데 엎드리듯 피아노에 귀를 대고 월광을 연주하는 장면이나 나폴레옹 전쟁통에 오스트리아 빈이 쑥대밭이 되는 장면에서 운명 교향곡이 흐르고 애초 나폴레옹(나폴레옹 1/Napoleon Bonaparte)에게 헌정하려던 영웅 교향곡의 표지 ‘Bonaparte’를 박박 지우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실제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도 지극히 상상력이 동원된 허구와 사실의 조합이다. 다만 베토벤의 불멸의 편지라는 같은 소재로 출발했음에도 뮤지컬 베토벤의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서사는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협소하다.

베토벤의 연애사는 마침 베토벤이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완성하고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중기(피아노 협주곡 3, ‘영웅 교향곡이 잇달아 발표된 1803~1804년 이후 약 10)와 맞물리는 대략 십여 년이다. 대부분 1~2년의 짧은 연애였는데, 사랑만은 절절했다. 귀족 가문의 여성들을 사랑한 탓에 끝내 결혼에 이르진 못했으나 베토벤은 음악가답게 자신이 사랑한 연인들에게 다수의 주요 작품을 헌정했다. 사랑이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뮤지컬 베토벤에서는 안토니를 만나기 전 베토벤의 연애사는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평생 사랑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묘사되는데, 그의 연애사는 대표적으로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 줄리에타 귀차르디, 테레제 말파티와 연애가 유명하다. 귀차르디와의 연애가 불발되고 청각 장애가 심해진 1802년에는 베토벤 사후 발견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뮤지컬 베토벤은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월광 소나타’, 테레제에게 헌정한 엘리제를 위하여를 넘버로 쓰면서도 안토니만이 유일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디 붙일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안토니에게 헌정한 곡은 작품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안토니는 사실상 베토벤의 마지막 연애사의 주인공이다. 1810년 처음 만난 안토니와의 연애는 대략 1811~1812년 사이로 알려진다. 베토벤은 안토니와 이별 후에도 청력을 거의 상실한 1819~1823년 사이에 작곡된 안톤 디아벨리의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 일명 디아벨리 변주곡 Op. 120을 그녀에게 헌정했다. 이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가장 위대한 피아노 변주곡으로 꼽힐 정도로 클래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세상에 베토벤은 나 하나라는 높은 자존감을 지닌 베토벤이 그런 작품을 이별 후 십여 년이 지난 시점에 그녀에게 헌정했다면 베토벤에게 안토니는 한때의 연인 이상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귀족 신분이면서도 계몽주의에 심취했던 안토니는 이후 사회활동에 주력하며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라는 경칭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존경했던 괴테가 황족이나 귀족에게 모자를 벗어 예를 차리는 모습에 단칼에 절연했을 정도로 귀족주의를 혐오했던 베토벤이기에 안토니는 오랜 시간 이념적 동지이자 친구였을 수 있다. 실제로 베토벤은 그녀의 딸 막시밀리아네에게도 피아노 삼중주 중 피아노 부분을 쉽게 편곡한 WoO 39와 말년의 걸작으로 통하는 피아노 소나타 30Op. 109를 헌정했다.

실상 불멸의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자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사적 배경과 안토니와의 일화 등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안토니가 베토벤의 후기 음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정의 불멸의 연인에 모자라지 않음이 중요한 것인데, 그들 사이에 무언가 풍성하게 숨어 있을 법한 뒷이야기의 '시크릿'을 기대했건만, 이들을 소재로 뮤지컬 베토벤은 어째 고작 베토벤과 안토니가 사랑했었다로 갈음하고 말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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