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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획②] 뮤지컬 '베토벤', 차라리 베토벤 주크박스라 했으면 편할 것을

  • 입력 2023.02.16 10:36
  • 수정 2023.11.25 17:28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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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리뷰기획①] 뮤지컬 '베토벤:Beethoven Secret', 그래서 '시크릿'은 어디에 있나 (http://www.tvj.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089편에 이어.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넘버로 등장한다. 베토벤은 특히 피아노 연주에 탁월했고, 피아노 소나타로 최고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데, 뮤지컬 ‘베토벤’에서도 주로 피아노곡을 가져왔다. 가장 크게는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중 3번 ‘영웅’, 4번, 5번 ‘운명’, 6번 ‘전원’, 7번, 9번 ‘합창’이 쓰였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14번 ‘월광’, 8번 ‘비창’, 23번 ‘열정’, 21번 ‘발트슈타인’, 17번 ‘템페스트’ 외 피아노 협주곡 3번, 5번 등이 쓰였다. 베토벤의 서곡 중 가장 사랑받는 코리올란 서곡도 등장한다. 작품 번호(Op.)가 없는 곡도 있다. 일명 베토벤 미뉴에트로 통하는 WoO 10-2와 WoO 59 ‘엘리제를 위하여’도 넘버로 들어왔다.

뮤지컬 ‘베토벤’은 사실상 베토벤의 작품 중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곡을 넘버로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곡들인 만큼 음악 자체로는 논할 의미가 없다. 다만 이 명곡들이 뮤지컬 넘버로 들어온 구성은 아쉬움이 제법 있다. 사람이 부르는 곡으로, 또는 장르를 바꿔 극과 장면에 맞추고자 한 노력은 분명해 보이나 베토벤의 음악과 관련한 그 이상의 접점은 찾기 어렵다.

1막 오프닝에 등장하는 교향곡 7번은 잠시의 공백 이후 베토벤이 새롭게 내놓은 작품으로, 1813년 빈에서 초연돼 큰 성공을 거뒀다. 사실상 베토벤의 건재를 증명한 작품이건만 단조 2악장을 가져와 베토벤의 장례에 붙였다. 또한, 베토벤은 청각 장애가 심해지면서부터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휴양을 즐겼고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만들어진 작품이 교향곡 6번 ‘전원’이다. 그중 3악장은 시골 전통 춤곡 형식의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이라는 부제가 붙은 곡인데, 이 곡을 미뉴에트(귀족 취향의 춤곡) 식으로 가져와 귀족 연회 장면인 ‘상류층’에 사용한다. 어쨌든 모임이고 춤곡이니 가져다 쓴 모양새다.

가장 크게 헛웃음이 난 대목은 ‘월광’과 ‘엘리제를 위하여’다. 안토니가 끝내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는 마음을 노래한 넘버 ‘매직문’에 ‘월광’이 쓰인다. 이 곡은 베토벤이 실제 연인이었던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곡이다. 베토벤이 다른 연인에게 준 곡을 작품 속 베토벤의 유일한 사랑이라 부르짖는 안토니가 메인 테마로 부른다는 소리다. 또 다른 연인 테레제 말파티에게 헌정한 곡으로 알려진 ‘엘리제를 위하여’는 극 중 안토니 남편의 여동생인 베티나에게서 소비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베토벤 뮤지컬에 베토벤의 음악이 있다고 이 음악이 왜 여기에 쓰였을지 숨은 의미를 찾아보자는 수고는 거두는 게 좋다.

다른 넘버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미보다는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에 초점이 맞춰있고, 어느 곡도 원곡을 파격적으로 벗어나진 않는다. 해서 뮤지컬 ‘베토벤’은 차라리 베토벤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보면 마음 편하다. 다만 주크박스 뮤지컬은 음악과 장면의 이질감을 종종 느끼게 되는데, 뮤지컬 ‘베토벤’ 역시 그 불편함은 감당해야 한다. 일부 보컬 선율이 따로 작곡된 곡도 있으나 비중이 크지 않다. 작품을 관람한 관객 사이에서도 뮤지컬 ‘베토벤’의 작곡가는 그냥 베토벤이더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의미의 생경함만이 거북함의 전부는 아니다. 애초 ‘매직문’ 데모 버전이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보컬이 곡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북돋는 덕에 실제 작품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기대를 끌어올렸으나, 옥주현의 ‘매직문’은 흡사 뮤지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르듯 포효해 어리둥절케 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월광’ 특유의 스산한 적막이 온데간데없다. 

그래도 ‘매직문’은 ‘엘리제를 위하여’보다는 낫다. 넘버 ‘비밀의 정원’에 쓰인 ‘엘리제를 위하여’는 원곡의 주선율을 그대로 가져와 가사를 붙였다. 그것도 악보의 오른손 선율을 보컬로, 왼손 아르페지오 반주를 연주로 처리했는데, 딱히 평할 재간이 없다. 곡을 참 쉽게 다룬다는 인상만이 씁쓸하게 남는다. 시간이 부족했나, 대선율은 어디로 갔나, 이렇듯 적나라한 곡을 다른 도움 없이 보컬로 타건을 대체할 발상을 했다니, 다른 의미로 매우 놀라웠다. 심지어 부르는 배우까지 이 서정적이고 담담한 단조 선율을 다분히 장난스럽게 부른다. 민망함은 왜 관객의 몫인가. 

또한, 뮤지컬 ‘베토벤’의 음악은 구조적인 지루함이 크다. 가장 큰 원인은 리프라이즈(reprise)가 너무 많다. 넘버는 총 52곡. 1막에 30곡, 2막에 22곡이 배치됐는데, 넘버 하나에 2~3곡을 나열한 곡을 모두 합하면 실제 곡 수는 1막이 35곡, 2막은 26곡이다. 그중 1막에 23개의 원곡이 쓰였다. 1막 중에도 들은 곡을 또 듣게 된다는 소린데, 그 대부분이 2막에서 다시 반복된다. 2막에서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곡은 5곡밖에 되지 않는다. 악장을 달리 쓴 곡과 ‘피날레’의 연결 3곡 중 ‘합창’을 포함한 계산이다. 정리하자면 총 61개의 곡을 28곡으로 돌린다는 소리다. 가장 많이 쓰인 곡은 ‘비창’으로, ‘서부의 사냥꾼(1,3악장), ‘아주 오래전 멋 옛날(1,3악장)’ 1,2,3, ‘사랑은 잔인해(2악장)’ 1,2, ‘미쳤나 봐(2악장)’ 등을 포함해 1~2막에 걸쳐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장르적 특성상 2막의 주인공 넘버에 힘을 줄 수밖에 없는데, 너무 잦은 반복으로 딱히 음악의 하이라이트 구간을 꼽기가 어렵다. 굳이 꼽으라면 안토니-베토벤-듀엣으로 이어지는 ‘매직문’에서 ‘사랑은 잔인해’, ‘잘 가 절망이여!’까지를 들 수 있을까, 그나마 안토니의 넘버 ‘매직문’만이 2막에서의 첫 등장이어서 임팩트가 크지 않다. 게다가 이 세 곡의 원곡인 ‘월광’ 1악장, ‘비창’ 2악장, 피아노 협주곡 3번 2악장은 모두 피아노곡이거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는 느슨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특징인데, 비교적 가깝게 배치된 탓에 상당 시간 비슷한 느낌이 흐르는 인상이 강하다.

피날레 직전 2막 엔딩을 장식한 ‘너의 운명’ 2는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1주제를 앙상블에 붙였다. '꽈과과광~ 꽈과과광~' 바로 그 곡이다. 뮤지컬에서는 흡사 8비트 록을 느리게 듣는 느낌이다. 그렇게 느려졌는데도 가사가 제대로 따라붙질 않는다. 애초 사람의 숨 쉴 곳 따위 염두에 있을 리 없는 '힘차고 빠르게' 구간을 사람이 하자고 느리게, 그 상태로 원곡을 표현하자니 죽도 밥도 되질 못 한다. 이 곡을 한국어 가사로 노래한다는 자체가 썩 좋은 아이디어로 보이진 않았다. 특유의 텐션 짱짱한 감흥이 살길이 없다. 그래도 이 구간을 지나면 사비의 선율은 아름답다. 참고로 1막 엔딩 ‘너의 운명’ 1은 ‘운명’ 2,3,4악장이 쓰였다.

그 와중에 작품의 하이라이트 격인 ‘불꽃놀이’가 다소 체면을 살린다. 교향곡 9번 2악장을 사용했다. 특유의 팀파니 연주가 불꽃놀이 장면에 적격이었던 모양이다. 현악기가 표현한 선율을 앙상블에 입힌 효과도 큰 이질감 없이 장면의 분위기를 고조한다. 4악장이 워낙 유명해 붙은 이름인 ‘합창’은 피날레에 쓰였다. ‘환희의 송가’ 만큼의 소름 돋는 웅장함에는 한계가 있으나 뮤지컬 ‘베토벤’의 피날레로 그만한 곡이 또 있을까. 그 외 나머지 사이 배치는 이미 1막에서부터 들은 곡들이 줄줄이 재등장하기에 딱히 환기를 주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뮤지컬 ‘베토벤’은 베토벤의 명곡이 끊임없이 흐르지만, 뮤지컬 ‘베토벤’의 시그니처 넘버를 꼽으라면 애매하기 짝이 없다. 러닝 타임 내내 음악이 흐르는 뮤지컬에서 이것만큼은 치명적이다. ‘오페라의 유령’ 하면 ‘The Phantomn Of The Opera’가 있고 ‘캣츠’ 하면 ‘Memory’가 있듯, 이러한 시그니처 넘버는 매 시즌 관객 동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좋은 곡도 한두 번이지, 타이틀 롤이 엄연히 베토벤인데 안토니의 ‘매직문’이 비교적 더 크게 각인되는 것도 그 역효과일 것이다. 음악으로 딱히 의미 둘 곳이 없는데 이미 너무 유명해서 명곡이라 불리는 곡들의 반복 주입이 무슨 큰 효과가 있겠는가.

더불어 여담으로, 악성(樂聖) 베토벤을 소재로 한 작품의 프로그램 북에 넘버(작품) 소개가 고르지 못하고 일부 틀린 정보가 포함된 것은 실로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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