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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재림, '와이프'로 첫 연극.."볼수록 심오한 작품, 어렵지만 재밌기도"

  • 입력 2024.01.29 09:54
  • 수정 2024.01.29 23:05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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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볼수록 대본이 진짜 심오하고, 깊고, 여러 장치가 보이고, 그걸 찾는 재미가 있어요. 진짜 어려우면서도 차츰 해결해가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연극 와이프에 출연 중인 배우 송재림을 인터뷰로 만났다.

연극 와이프는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아담슨(Samuel Adamson)’2019년 작품으로, 헨리크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이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1959, 1988, 2023, 2046년의 시점으로 성 소수자의 삶과 사랑, 더불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 형태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한쪽이 남성과 결혼한 여성 커플, 가치관이 다른 남성 커플, 어린 동성과 결혼해 아내의 삶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58세 남성 등이 그들을 향한 다른 시선과 공존하며 서로의 꼬리를 문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0년대, 국내에 퀴어문화축제(퍼레이드형 성 소수자 축제)가 시작된 초기에는 퀴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혐오의 시선이 컸다. 그러나 강산도 변한다는 20여 년 세월 동안 모든 개인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근에는 서울 등 9개 도시에서 퀴어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사안인 만큼 굳이 찬양할 일도 강제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현재는 국내에서도 웹툰, 소설, 드라마 등 지극히 대중적인 콘텐츠에 동성 소재가 낯설지 않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연예투데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배우 송재림은 연극 와이프에서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로버트와 28세의 성소수자 아이바를 연기한다. 이번 연극으로 송재림은 연극 출연이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다시 봤다, 연기를 이렇게 잘했느냐는 등의 호평을 이끌며 성공적인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이죠. ‘인상 깊었어요’, ‘연기 좋았어요하시는 말씀이 제일 좋죠.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에 익숙한 것을 벗어나서 뭔가 모험을 해야 할 느낌이었어요. 그게 얼마나 힘들지 알지만, 그냥 무식하게 용기를 내야 할 시기였던 것 같아요. 뭔가 마흔을 앞두고 좀 더 혈기 있을 때 도전하고 싶은 마음(웃음)? 알면서도 선택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제일 힘들었던 게 말하는 속도와 리듬이었어요. 저는 말이 느린데 캐릭터는 말이 정말 빨라서, 극이 계속 가니까 다행이지, 내 생각을 와다다다쏟아내는 게 정말 쉽지 않구나. 그 와중에 딕션도 챙겨야 하고 서로 말하는 템포를 신경 써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나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극에 참여하는 배우로서 연극 와이프는 어떤 작품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사랑, 그리고 나다움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메시지인 것 같고,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아, 그들도 우리도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는 대사를 보면 변치 않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같은 작품을 봐도 각자 느끼는 게 다르고, 공감하는 포인트도 다르잖아요. 배우들이 2역 혹은 3역을 하는데, 단순히 연기 변신이 아니라 서로 정반대의 캐릭터를 이어가는 의미가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용기, 그런 이야기로 이 연극을 보시면 좋지 않을까. 단순히 이 연극을 봤다고 성 소수자인 게 아니고, 누군가는 로버트가 옳다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연극 와이프는 정말 많은 텍스트가 찍히더라고요. 배우가 모든 대사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하면, (관객이) 그것을 통해서 그냥 사람 본연의 이야기를 안고 갔을 때 좋은 연극이 되는 게 아닌가. 대사에서도 ‘‘이게 나야라고 말하지 않으면 넌 자유롭지 못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잖아요. 그것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하필 데뷔 후 첫 연극이 배우 혹사극으로 통하는 와이프. 연극에 쉬운 작품이 있겠냐마는 앞서 연습실 공개 행사 때 베테랑 배우들도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어렵다였을 정도다. 수잔나, 마조리 역을 제외하고 모두 12역을 맡는데, 엄청난 대사량은 둘째치고 각 시대에 등장하는 캐릭터 해석은 물론 이 캐릭터가 전후 시대에 미칠 영향과 유기성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그 해석의 깊이가 곧 작품의 밀도를 완성한다.

무식하니 용감하다고(폭소), 저는 이게 첫 연극이잖아요. 어려운 주제, 어려운 연극이라고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연극을 배운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요. 라이브하게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건 기존 드라마에서도 많이 했었지만 3시간 체력 쇼 수준으로 이렇게 와다다다’ 40분을 쏟아낸다거나, 테크닉적으로나, 끌고 가는 힘이나, 그런 것들이 정말 많이 누적되고 체화되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서는 스스로 칭찬할 수 있기도 하고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단순하게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한 사랑 이야기구나했는데, 볼수록 대본이 진짜 심오하고, 깊고, 여러 장치가 보이고, 그걸 찾는 재미가 있고요. 처음에는 대사량이 엄청 많고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말에 감정이 안 붙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매체 연기와 연극 연기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연극에서는 인서트가 없으니까, 배우의 감정이 계속 바뀌는 걸 말을 통해 전달해줘야 하는데, 특히 아이바는 긴 대사를 하면서 감정이 막 왔다 갔다 하는 걸 보여줘야 해서, 진짜 어려우면서도 차츰 해결해가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연습 내내 풀리지 않던 퍼즐은 결국 무대에서 맞춰졌다고 한다. 더불어, 다 쏟아냄으로써 새롭게 채워지는 활력은 연극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극이더라고.

연습실에서는 정말 늘 죽상과(웃음) 소심해 있었는데, 선배들이 (연극은) 무대에 서고 관객 앞에 있을 때 완성되는 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전에는 무대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무대의 감각을 모르는 거죠. 무대에서 소리를 내본 적도 없고 이 공간을 어디까지 인지해야 하는지, 동선이라든가 소리의 크기라든가, 그런 건 연습실에서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없었는데, 무대에 들어와서 런쓰루나 리허설을 하면서 그전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맞춰지더라고요. 배우들끼리 연기로 계주를 하는 느낌인데 그게 딱딱 잘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 정말 좋고, 무대에 서고 매번 끝날 때마다, 연극 선배들이 말씀하시는 무대가 주는 느낌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그게 반복되면서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3시간이 힘들면 힘들 수 있는데 그걸 끝냈을 때, 좋은 유산소 운동을 끝내고 리프레시 되는 것처럼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서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송재림은 연극 와이프에서 위신이 중요한 기성세대의 인물 로버트와 그의 아들인 28세 아이바를 연기한다. 특히 아이바는 송재림, 이승주가 연기하는 28세 이후 정웅인, 오용이 58세의 아이바로 바통을 잇는데, 아버지부터 이어진 아들, 이후 중년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극적 대비에 초점을 뒀다고 한다.

“28세 아이바를 송재림이 연기해도 뒤에 정웅인, 오용 선배가 아이바라는 캐릭터 자체를 완성해주니까, 제가 아이바를 혼자 한다는 느낌은 안 들거든요. 다만 대비를 극명하게 줘야, 어찌 보면 막 과할 정도로, 폭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날뛰어야 그랬던 아이바가 나중에 이렇게 됐구나하는 격차를 관객분들이 더 잘 느끼게 되는 것 같고, 28세 아이바가 1막 로버트의 아들이잖아요. 로버트의 모습이 아이바에게서도 나오는데, 그게 지문에 쓰여있어요, ‘로버트처럼 킬킬거린다’. 그런 부분을 잘 짚어줬을 때 그런 아버지의 이랬던 아들이 나중에 이렇게 됐구나’, 그렇게 시대별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게 있어서, 매 순간 그런 포인트를 잘 짚어주는 게 극이 잘 흘러가게 하는 목표라고 들었고요.”

로버트를 연기할 때도 바로 2막에서 연기하는 아이바의 연결에 집중했다고 한다. 다른 인물이지만 한 명의 배우가 잇따라 연기하는 모습으로 상징성을 드러낸 연극적 장치다.

“1막 수잔나와 데이지는 동성의 사랑이 금지된 시대에 사랑한 이야기고, 로버트는 시대가 옳다고 하는 사회적 기준 그 자체이면서 가부장적인 꼰대스러움이 있는 인물인데, 이 로버트를 어느 정도 악역 수준으로 올려놔야 2막의 아이바가 타당성을 얻어요. 59년에는 그 시대의 옳고 그름을 강요했던 사람(로버트)88년에서는 그에 투쟁하는 혁명가(아이바)의 모습인데 그조차 누군가에게는 강요하듯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또 로버트와 닮았고, 그 때문에 데이지가 아이바를 조금 어려워할 수도 있고, 그렇게 4막까지 극이 돌고 돌면서 캐릭터가 서로 바통을 이어가고, 그러면서 시대의 점프가 3번 있는데, 그 중간의 공백이 울림이 큰 것 같더라고요. 28세 아이바와 58세 아이바 사이에 어떤 인생을 겪었길래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런 빈 여운을 생각하게 하는 거죠.”

첫 연극에서 다행이라면 같은 역할의 배우 이승주가 좋은 참고였다고 한다. 어찌나 관찰(?)을 많이 했던지 특유의 액션까지 따라 할 수 있다며 보여주는 통에 한바탕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번에 승주 형 벤치마킹을 엄청 했어요. 형은 연극계 매드 클라운 같아요. 와 진짜로. 가장 말을 느리게 하는 사람이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을 벤치마킹하면서 따라가고 있는데, 딕션이나 스피드나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태생이 그런 사람은 못 따라가요(폭소). 그리고 연극 무대에 많이 선 사람의 몸짓이라든가, 동선 쓰는 거나, 같은 캐릭터를 어떻게 푸는지, 그럼 나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번에 승주 형을 보면서 엄청 많이 배웠고, 좀 과한 것 같은 제스처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많이 오버스러울 수 있는데 무대에서는 이게 맞더라고요.”

연극 와이프는 레플리카 방식이어서 우리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식으로는 두세 마디면 끝날 대화가 30분을 이어가는 화법이라든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단어를 비롯해 일부는 매우 노골적인 대화도 등장한다. 해서 관람에 불편했다는 평도 더러 있으나 매우 뛰어난 극적 요소와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칭찬이 자자하다. 최대한 거부감을 덜어낼 방향을 모색한 덕분이다.

그래서 (88) 에릭과 아이바가 되게 재밌게 잘 놀아야 해요. 둘이 그렇게 센 말을 하면서도 재밌고 명랑하게 보여야 거부감은 덜면서 뒤에 스스로 너를 드러내, 나와라고 하는 부분이 진정성 있게 살더라고요. 해서 그런 강한 향신료가 있는 말들이 뒷부분을 위해서는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만약 우리가 고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의미를 살리려다 보면) 결국 원작과 비슷하게 오지 않을까(웃음). 그래도 그 장면이 배우의 쇼맨십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어서 서로 말하는 템포나 티키타카가 딱딱 맞아 돌아가면 다들 빵 터져서 웃으시더라고요.”

이번 시즌 연극 '와이프'는 박지아, 김소진, 김려은, 최수영, 정웅인, 오용, 이승주, 정환, 홍성원, 신혜옥, 표지은이 함께한다. 혹여 다음 시즌 제의가 온다면 꼭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다. 고생한 보람도 그렇거니와 새로운 연기 동료를 얻은 만족감이 큰 듯했다. 

저는 할 것 같아요. 일단 이 고생을 했는데(폭소). 그리고 극 중에 연극이란 게 참 이상해. 만나자마자 가족으로 만들면서도 만나자마자 굿바이라고 하는 마조리의 대사가 있는데, 연극이 끝나갈수록 이 대사가 귀에 박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들이랑 테이블 작업하면서부터 친해지고, 아침 9시에 가서 12시간씩 직장인 생활을 했던 때가 그립더라고요. 아무래도 함께하는 시간이 매체 보다는 길 수밖에 없어서 서로 사람으로도 더 많이 알게 되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때부터 이미 끈끈해지는 거죠. 앞으로 연기 생활에 좋은 동료들이 생겼다는 게 가장 좋고, 해서 다른 연극도, 물론 거기가면 또 어렵겠지만 많이 해보고 싶어요.”

끝으로, 2024년 새해에는 또 어떤 계획을 품고 있을까.

작년보다 더 일을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는 게 올해 목표예요. 올해 마흔이 되기도 했고, 제가 요즘 저를 봐도 지금의 결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릴 때는, 어린 친구들한테 요구하는 연기나 캐릭터가 있잖아요. ‘꽃미남’, ‘연하남같은? 근데 저는 그거 되게 힘들었거든요(폭소). 나이는 어려도 애늙은이 소리를 듣는 친구들 있잖아요. 제가 좀 그런 편이었어요. 실제 마음은 좀 더 남자답고, 수염 기르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 성향이었는데 이제 나이대도 그렇고 저랑 좀 맞아들어가는 느낌이어서, 지금의 이 결이 같이 갈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연기에서나 사람을 대할 때도 가장 나답게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일에 대한 몰입도도 더 많이 생길 것 같고, 나한테 더 솔직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해서 나이 듦과 동시에 일도 같이 잘 가면 좋겠다. 특히 올해는 (연극으로) 좋은 종료들도 얻고 되게 좋은 시작인 것 같고, 해서 당장은 마지막까지 좋은 작품 잘 마치는 게 목표고, 찍고 있는 드라마나 찍어놓은 영화들이 있어서 그것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연극 와이프는 오는 22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유플러스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사진제공=()글림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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