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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현장] 이념과 편견 넘어선 인간애..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 입력 2024.02.03 18:22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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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6년 만에 돌아왔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성 소수자 '몰리나'와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을 다룬 2인극이다. 1976년 발간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됐고, 2015, 2017년 시즌을 거쳐 올해 6년 만에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돌아왔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박제영 연출은 작품에 대해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쓰인 작품이 오늘날에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 발렌틴과 몰리나처럼 우리도 언제든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다수의 의견이나 편견에 의해 소수가 억눌리고 개인의 존엄성까지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있지 않을까. 혹은 개인적인 삶에서도 어떤 지점은 감옥처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이 작품과 맞닿아 있어서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호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시대적 억압의 해결책을 마누엘 푸익이 제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박제영 연출은 이번 시즌의 연출을 비롯해 각색을 직접 맡았다. 새로운 살을 붙이기보다 원작자가 쓴 희곡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면서 캐릭터를 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며 두 인물이 너무나 상반되는 인물이다.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몰리나는 감옥을 나가기 위해 발렌틴에게 자신의 영화 이야기로 뭔가 캐내려고도 하고 친해지려고도 하고 또 사랑이라는 감정도 올라온다. 발렌틴 역시 몰리나에게 자신의 사상을 부탁하고 싶은 심리적인 상태에서 그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돕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의 이상을 조금씩 주입해간다. 그런 충돌 지점들이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존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려 많이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그의 설명대로 거미여인의 키스는 사상과 이념, 편견과 혐오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결국은 서로를 포용하고 보듬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 수십 년간 국내에서도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공연된 만큼 딱히 낯설지 않은데, 반면 같은 이유로 오직 2인극인 이 작품에서 몰리나를 여자 같은 남자의 전형을 연기해서는 색다른 감흥을 끌어내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박제영 연출은 그에 대해 제일 처음 고민했던 지점은, (배우가) 어떻게 하면 여성으로 자신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였다. ‘어떤 행동으로 여자처럼 보여야지가 아니라 난 그냥 여자야’. 손짓이든 움직임이든 모든 것에 선입견 없이 우리 막 움직여보자라는 이야기를 했었고, 이 부분이 계속 고민돼서 프리 프로덕션 과정 중에 브로드웨이를 잠시 다녀왔다. 거기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한 10개 정도의 작품을 봤는데, 굉장히 거침없더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걷고 호흡하는 모든 것이 여성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냥 여자여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해서 그냥 난 여자니까 어떻게 움직여도 여자야그러니 편하게 움직여달라고 했고, 그 안에서 각자의 매력이 더 도드라지게 나온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에서는 자신을 여자라고 믿고 있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는 전박찬, 이율, 정일우가 맡고,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 역은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함께한다. 앞선 시즌을 통해 정성화, 박은태, 최재웅, 김주헌, 김호영, 정문성, 김선호 등 걸출한 배우들이 활약했는데, 특히 올해 정일우, 차선우의 합류는 이날 간담회 현장 분위기에서부터 주목을 실감케 했다.

사진=전박찬, 이율, 정일우,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

각자 자신의 캐릭터에 중점을 둔 부분으로, 먼저 전박찬은 몰리나라는 인물이 쉽지 않게 다가왔다. 왜냐면 성 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냐 트랜스섹슈얼이냐 논쟁도 있었는데 규정할 수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중점적으로 접근한 부분은 객석에 언제나 당사자가 앉아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 하나로 접근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고, 이율은 “(몰리나의) 발랄함 등 연출님의 방향성에 맞추려 했고, 2인극이다 보니까 상대와 호흡을 잘 맞춰야 해서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연습했다.”라고 말했다. 또 정일우는 몰리나와 정일우가 가진 색깔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몰리나의 유약하면서도 섬세한 부분을 최대한 포인트로 잡아서 잘 살려보려 했던 것 같고, 내가 잡은 몰리나는 유리알처럼 깨질 것 같이 약해 보이면서도 자기의 감정이나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캐릭터로 잡았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정일우는 엘리펀트 송이후 5년 만에 연극 출연이다. 대중이 기대하는 기존 이미지로는 발렌틴에 가까운 듯한데, 연극 무대에서의 욕심으로 몰리나역에 도전하게 됐다고 한다. 공연은 최근 개막했지만 두 달 이상이 연습을 진행한 만큼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번 출연 계기로 정일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사실 나도 대본을 처음에 읽을 때는 발렌틴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오랜만에 연극에 복귀하면서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면 더 좋을까 생각했을 때는 몰리나가 더 욕심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나에게도 도전이었고, 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었는데 아직 찾아가는 중이고, 형들이나 연출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게도 공연을 잘 올릴 수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싱크로율은 당연히 100%에 맞추려 준비했던 것 같다. 몰리나에게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유리알처럼 섬세한 친구여서 손동작이라든지 앉아 있을 때, 걸을 때라든지 모든 것을 여성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목소리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고, 어떤 톤에 어떤 목소리를 내는 게 가장 몰리나와 비슷할까를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금 발렌틴역으로 돌아온 박정복은 이 작품을 워낙 좋아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았다. 발렌틴 역을 준비하면서 이전 시즌과 크게 다른 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셋이 텍스트로 많이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그냥 이 텍스트가 가진 힘, 이 인물이 어떻게 가고 싶은지에 중점을 뒀다.”라고 전했다. 최석준 역시 나만이 뭔가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던 것 같다. 대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발렌틴이 중점을 둬야 할 것, 표현해야 할 것들을 셋이 공유하며 하다 보니 선우나 정복이 형의 발렌틴에 정말 좋은 점들이 많아서 나는 중간에서 잘 섞기만 하면 됐다.”라고 말했다.

특히 차선우는 연극 '헬로, 더 헬: 오델로'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연극 무대에 섰고, 국내 무대는 이번 거미여인의 키스가 데뷔작이다. 그는 내가 무대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오델로는 피지컬적인 작품이어서 연기하는 느낌보다 몸을 쓰는 느낌이 많았고, 무대에서 그동안 했던 음악이 아닌 내가 해보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서 요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라며 연극이 처음이다 보니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 발성, 몸동작, 연기의 농도, 그런 것들도 잘 모르겠고, 많이 헤맸던 것 같다. 그게 많이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는데, 다행히 좋은 연출님과 형들 덕분에 캐릭터를 잘 만들어갈 수 있었고, 내가 가진 게 부족해서 형들의 연습을 보면서 많이 흡수하려 했다. 그러면서 나만의 발렌틴을 어떻게 더 끌어내 볼 수 있을지 욕심이 나더라. 열심히 노력하며 공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감회가 남다른 또 한 명의 배우가 최석진이다. 지난해 뇌경색 진단을 받아 회복에 전념했던 그는 이번 작품으로 반가운 복귀 신고식을 치른다. 최석진은 쓰러지고 복귀하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이 대본을 봤고, 어쩌면 발렌틴이 겪는 어려움과 나의 어려움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대에서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겁내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라며 뇌경색이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서 지금도 꾸준히 약을 먹으며 재활 치료도 하고 있다. 그리고 제일 무서웠던 건 포용적 예술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내 무대를 보면서 많이 아팠잖아, 아팠던 것 치고 괜찮아라는 식으로, 예술 그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포용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이 악물고 더 준비를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나갈 생각이라는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끝으로 전박찬은 성 소수자와 정치 사상범의 로맨스로 보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는 맞지만, 특히 2024년 한국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차별, 억압 그리고 우리 역사의 어떤 운동과도 관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분들이 이 작품을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볼 기회가 아직 많이 남은 것 같다.”라며 성원을 당부했고, 박제영 연출은 우리 여섯 배우분의 색깔이 다 다르고 그 재미가 다양해서 보고 또 봐주시면 좋겠다.”라고 강조하며 재치 있게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오는 3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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