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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연극 '와이프', 그는 왜 아내가 되었나

  • 입력 2023.12.14 10:58
  • 수정 2023.12.15 04:18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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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사회적 약자에 관한 통찰, 연극 와이프3년 만에 돌아온다.

연극 와이프는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아담슨(Samuel Adamson)’2019년 작품으로, 헨리크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이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1959, 2023, 2046년까지 4개의 시대를 통해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 형태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연극 인형의 집이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여성의 독립과 사회적 역할을 다뤘다면 와이프는 그에 더해 성소수자를 조명하면서 그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한다. 동성의 결혼이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선입견과 새롭게 등장한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아가는 각 인물의 이야기다.

이번 시즌에서는 인형이 집에서 노라를 연기하는 배우 수잔나 역에 박지아, 김소진이 캐스팅되었고, ‘데이지, 클레어역에는 김려은과 소녀시대출신 최수영이 출연한다. , ‘피터, 아이바(58)’ 역에는 초연부터 함께한 오용과 정웅인이 맡고, ‘로버트, 아이바(28)’ 역에는 이승주, 송재림이 참여한다. ‘에릭, 카스역에는 역시 초연부터 참여한 정환과 홍성원이 함께한다. ‘마조리역에는 신혜옥, 표지은이 나선다.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 JTN 연습실에서 연극 와이프의 연습실 공개 행사가 진행됐다. 4장면 시연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먼저 신유정 연출은 3년 만에 돌아온 작품에 대해 “(처음에)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우연히 이 대본을 받았다. 영국에서 핫하게 공연을 마치고 3~4개월도 안 된 채로 대본을 받고 2개월 안에 부랴부랴 번역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관객분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꼭 외부의 반응을 떠나서 내 삶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들더라. 공연을 볼 때마다 마치 클레어처럼 내 안에 살아 있는 어떤 것들이 울렁거리는 감정을 느꼈는데, 그래서 다시 꼭 이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에 첫 리딩을 할 때도 그 울렁거림이 매우 슬프기도 하면서 정말 모두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 감정들을 정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또 열심히 그 길을 찾아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연극 와이프는 특히 성소수자의 삶과 퀴어(Queer)를 향한 사회적 인식을 조명한다. 과거 기혼 여성의 통칭이 와이프라 치면, 현재는 여성 간 결혼한 여성도, 남성 간 결혼한 남성도 와이프다. 시대의 변화로 남성이 법적인 와이프의 범주에까지 들어왔으나 변함없는 것은 많은 국가에서 와이프는 여전히 상대적 약자의 포지션이라는 점이다. '인형의 집'에서도 그러했듯 인류 역사에 줄곧 기득권을 차지했던 것이 남성이건만 일부는 그를 포기하고 약자인 와이프를 자처한다. 평범한 여느 와이프에 비해서도 더욱 약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형의 집'의 꼬리를 문 '와이프'는 그 아이러니를 붙들고 더욱 맹렬한 기세를 드러낸다. 

신유정 연출은 “1959년도부터 시작된 이 드라마가, 사실 당시에는 성소수자를 무엇으로 명명할 단어조차 없던 시대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이 뒤집힌’, 소위 일반과 다른 이반이라는 표현인데, 현재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다양한 명명들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자신이 누릴 공간과 자유를 획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함에도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내 옆에 와이프가 혹은 내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에 대해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편안하게 안주함에 그치는 것에 대해 작가는 냉철하고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을 썼다는 것이 요즘 들어 가슴 깊이 느껴지더라. 그것이 연극의 본질인 것 같고,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불리는 입센의 계보를 이어가며 보고 있다는, 이 작품은 그 뿌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와이프는 남성 중에도 존재하고 여성 사이에서도 존재하는데, (작품의 와이프는)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고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 역시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지고, 조심조심 살게 되더라. 입센의 인형의 집은 시대를 앞선 페미니즘 연극의 시초로 불리는데, 입센은 단지 어머니와 누이들이 사회에서 당한 고통을 아파했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마음이 시대를 앞선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다만, 연극 와이프에서는 2023년 단락 중 클레어가 한참 어린 남편 카스를 둔 58세의 와이프 아이바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며 몰아붙이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자칫 다른 이의 삶을 부정하거나 변화를 강요하는 듯한 인상은 못내 아쉽다. 결별이나 이혼이 낙인되는 세상도 아닌 마당에 와이프의 삶이 힘겹다면 그와 갈라서든 머물든 본인의 선택이지 않을까. 또한, 성소수자의 최종 가치실현이 본인을 드러낸 퀴어 활동인가 하는 의문인데, 이는 크게는 문화적 차이일 수 있고, 더불어 소수자들의 절박함일 수 있을 것이다. 58세 아이바는 관객과 어떤 이야기를 함께하고자 할까.

정웅인을 캐스팅할 때, ‘와이프에서 배우 정웅인의 쓰임새를 다르게 활용하고 싶었다는 신유정 연출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정웅인은 막상 이렇게 어려운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며 아직 숙제다. 아이바가 왜 이렇게 까발려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게이를 커밍아웃하게 했나, 그리고 이 아이바58을 통해서 작게나마 삶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느낌도 든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삶의 변화를 가져가는 모양새가 된 대본이어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라고 밝히면서 “58세 아이바는 세금도 내고 집안일도 하고 셔츠도 다리고, 와이프로서의 삶을 너무 각박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클레어를 통해서 나의 모습이 까발려진다. 과거 28세 아이바는 퀴어 활동에 정진하고 자신의 주장도 강하게 폈던 사람이었지만, 부모의 아픔을 통해서, 카스의 와이프를 통해서 삶이 너무 피폐해진다. 이 사람도 와이프로 힘든 거다. ‘인형의 집노라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이 사람도 뭔가 새로운, 자신이 싸울 전장을 찾아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있다. 단면만 보면 굳이 뭘, 왜 또 새로운 전쟁을 찾아가려 하느냐, 그냥 안주하면 되지, 그럴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작가 아담슨은 그런 걸 보여주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오용은 부탁과 강요의 차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작품은 관계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와 나의 관계, 모든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나. 서로 오해가 생기고 다시 관계성을 회복하면서 많은 것들이 풀리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엄마와의 관계 회복이 나를 찾는 과정일 수 있지만, 그게 엄마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클레어가 공격해서도 있겠지만, 엄마와 나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또 새로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무엇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라면서 이 작품을 4년째 하고 있는데, 초연 때는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되게 어렵다. 그런데 조금씩 우리 엄마를 찾는 느낌이 들더라. 나도 엄마와 사이가 별로 안 좋은데, 이게 정말 중요한 거구나. 내 생각만 하고 엄마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라. 관객분들도 그런 관계 회복에 관해 생각해보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지아, 김소진은 인형의 집노라를 연기하는 배우 수잔나 역만 연기한다. 김소진은 수잔나가 각 시대 연극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좀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그 시대의 연극배우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그냥 나로서 보여드려야 할지 여러 고민 중이다. 오늘도 그 시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고, 공연에서 확인해주시면 좋겠다. 무엇보다 작품의 의미와 메시지를 잘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해서, 적절한 순간을 잘 찾아가 보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처음 서게 된 이들도 있다. 최수영과 송재림이다. 먼저 최수영은 출연 계기에 대해 연극 테베랜드를 보러 갔다가 연출님이 연극 대본인데 한번 읽어보라고 주셨는데, 사실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그냥 무대에 서고 싶다는 정말 얄팍한 도전 정신만 가지고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고, 와이프라는 작품의 정신이 좋았다. 정말 빽빽한 논쟁 속에 각자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 뜨거운 정신이 정말 좋았고, 어느 날은 이 캐릭터에 대입했다가 어느 날은 내가 저러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스스로 거울 치료도 하는 것 같고, 나한테 수잔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극장에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는 캐릭터가 정말 멋지게 보였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매력적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막상 고충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최수영은 매일매일 모든 게 어렵다. 그런데 매일 새롭고, ‘와이프내용처럼 나 자신을 찾는 것도 또 새로운 것 같다. 이렇게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정시에 밥을 먹고 리딩하고 연구하는 그 루틴 안에 들어온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움직임, 발성 등 해보지 않은 것은 다 어렵지만, 작품의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있을지, 그 마음을 다 느끼며 할 수 있을지, 그게 가장 어렵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송재림은 그동안 했던 것들에 익숙해지고, 틀에 많이 갇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이제 서른아홉이고, 새로운 스트레스(자극)가 필요했다. 그 프레임을 깨줘야 할 찰나에 연극이 있었고 도전하게 됐다. 배우로서 작품을 보게 되지만, 송재림이라는 사람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이해해 나갈 수 있는 단초들을 매번 발견하게 되더라. 그리고 드는 생각은, 생물학적인 남자 여자가 아니라 사람 마음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마음의 형태로 성별을 규정하는 것, 그런 것들이 조금 더 퀴어스럽고,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내가 제일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대본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그것이 이 연극을 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최근 수년 드라마, 영화 출연 배우들이 연극, 뮤지컬 등 무대로 속속 진출하는 추세이기도 한데 그 이유에 대해 송재림은 연극이나 매에 연기가 다르다는 게 아니라, 연기라는 본질, 조금 더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연기 본질에 다양한 툴을 더 공부해 볼 수 있고, 사람은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런 도전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영상 쪽은 AI나 여러 프로그래밍 등 도움을 받기도 하고 크게 발전하고 있는데, 반대로 클래식한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최수영은 무대에서 선배님들을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숨을 쉬고 호흡을 정말 자유자재로 바꾸고 나와 전혀 다른 해석으로 대사를 하고, 움직이는 걸 보면서, 매체 연기를 하던 배우분들도 무대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숨 쉬고 소통하는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경우는 그렇다.”라고 전했다.

특히 초연부터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의 소회도 남달랐다. 지난 시즌과 다른 깊이를 찾을 수 있었을까. 오용은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연기를 20년 넘게 해오는데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이 요즘 더 들더라. 세 번째인데도, 다음엔 풀리겠지, 뭔가 풀리겠지 했는데 찾기가 너무 힘들다. 아마 삶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찾아보겠다.”라고 전했고, 정환은 세 번째 와이프인데, 마치 녹차를 우리듯이 정말 계속 다른 걸 우려내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가가 여러 면을 정말 날카롭게 찌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구나느끼고 있고, 에릭과 카스를 두 번 했지만, 그 관성에 따르지 않고 또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배우분들이랑 같이 호흡하고 도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박지아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다양한 가치들을 우리가 함께 포용할 수 있는, 그리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서로 응원하고 응원받을 수 있는 공연으로 마무리되면 좋겠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라며 성원을 당부했다.

연극 '와이프'는 주제 의식과 목적성이 강한 작품이다. 그를 구현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케미스트리도 훌륭하다. 분명한 것은, 퀴어 찬반은 개인의 몫이나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찬반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 콘텐츠가 꾸준히 소비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식 변화의 밑거름이 되는 만큼, 3년 만에 돌아온 연극 '와이프'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한편, 연극 와이프는 오는 1226일부터 202422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사진제공=(주)글림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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