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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뮤지컬 '22년 2개월', 박열과 후미코..어쩐지 '앙꼬' 없는 이유는

  • 입력 2023.09.09 17:25
  • 수정 2023.09.21 16:24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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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박열 의사와 부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청춘을 조명한 뮤지컬 ‘222개월이 초연의 막을 올렸다.

뮤지컬 '222개월'은 평온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와 그에게 기대어 책을 읽는 여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일왕의 세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데, 222개월은 박열의 복역 기간이자, 박열과 후미코가 다시 만나게 된 시간을 의미한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일본 한복판에서 일제에 항거한 박열과 내 나라의 불의에 맞선 일본 여성 후미코가 체포된 것은 당시 우리 나이로 불과 스물둘, 스물하나였다. 그들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로 항일조직을 결성해 활동했고, 일 왕세자 결혼식에 폭탄을 터뜨려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무장 행동파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지 못한 채 1923년 관동대지진 참사가 벌어진다. 일본은 충격을 무마할 목적으로 괴담을 퍼뜨려 조선인 학살을 자행하고 적당한 희생양으로 박열을 재판에 세우는데, 박열은 오히려 재판을 이용해 일제 항거를 만천하에 알릴 절호의 기회로 보고 스스로 왕세자 암살범을 자처했다. 그 옆에는 후미코도 함께였다.

내가 뿌린 씨앗은 후세에 남아 딱딱한 지각을 깨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종국에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내가 일본제국에 준 상처는 영원히 일본의 몸에 남아 심장을 썩게 해서 마침내는 일본제국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나는 승리자다. 나는 영원한 승리자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박열이 크게 기뻐하며 당당히 선언했다는 말이다. 판사에게도 한 마디 빼놓지 않았다. “재판장! 자네도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뮤지컬 ‘222개월은 다미로 감독이 직접 대본과 작곡을 맡았다. 박열과 후미코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2017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계기로 대중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뮤지컬 ‘222개월은 그와 또 다른 관점으로 두 사람의 청춘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프레스콜에서의 이야기로 ‘222개월을 살펴보자.

다미로 감독은 처음에 둘을 접하면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느꼈다. 옥중수기를 읽고 , 이들도 독립운동가 이전에 그냥 스물한 살, 스물두 살의 청년들이었구나’.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독립운동가의 이미지만 생각하고 있지, 뛰는 가슴을 안고 사랑했고,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청년들의 과정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라면서 완고 후 박열의사기념관에 갔는데 가네코 무덤 앞에 제일 첫 문장에 가네코는 박열 무릎에 누워서 박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걸 제일 좋아했다라고 쓰인 것을 보고 생각한 건 대본 다시 써야겠다, 역사적 기록을 그저 나열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겠다였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나면 ‘(이들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구나, 그들도 이 시대를 살았던 청년이었구나’, 이 둘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길 바랐다.”라고 밝혔다.

이어 가네코 후미코는 아직도 일본에서 신여성의 핵심적인 인물로 통하고 있다. 그때 당시에는 여성으로서 사상적인 면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들을 극 안에서 확연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해서 중간에 가네코가 조금 더 박열을 끌고 가는 이미지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재판정에서는 박열 의사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모습을 끌어내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동거를 먼저 제안한 것도 후미코였다니 연인 관계에서는 후미코가 리드했을 수 있다. 베갯머리 송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후미코의 끝없는 지지와 포용은 박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살리자고 박열 특유의 도발과 파격에 미치지 못하는 점은 실로 아쉽다.

작품의 시작이었다는 그들의 사진이야말로 박열과 후미코의 파격을 대표하는데, 그들의 사진은 지금으로야 다소 남다른 커플 사진으로 보이지만 그 시절은 부부도 밖에서는 남인 마냥 체면을 차리는 것이 예였다. 여느 사진도 한 명이 앉고 한 명이 옆에 서는 모양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남편 다리 사이로 부인이 포개 앉은 자세도 그렇거니와 심지어 남 앞에 꽁꽁 싸매 입어도 모자랄 부인의 옷섬이 풀어져있고 어깨 위로 두른 남편의 손이 공교롭게도 부인의 가슴 위치에 얹혀 있다. 부인은 늘 그랬듯 평온한 얼굴로 책 읽기에 몰두하고, 남편은 그저 턱을 괴고 있으니 남사스러움은 둘째치고 사형 선고가 유력한 마당에 흡사 자기 집 안방인 듯하지 않나. 어딜 봐서 이들이 왕세자 암살범으로 잡혀 온 대역죄인인가. 제국주의 시대에 무정부주의를 주장했던 두 사람의 신념이 사진 한 장에도 참으로 도발적이고 과감하지 않은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여덟 살에 부모를 설득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매울 렬)’로 바꿨다는 박열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의 부끄러움과 두려움마저 자책했던 시인 윤동주가 있었고, 일본인 교도관까지도 성인(聖人)으로 존경했던 안중근이 있었다면 박열은 그의 시 개새끼나 재판 과정의 태도에서 보듯 파격을 빼고 논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후미코는 그런 박열을 사랑했고, 신념을 함께한 동지로서는 우상적 존재였다.

일본에서 만나 옥중에 부부가 되어 고향의 어머니가 후미코의 얼굴을 모르니 사진을 보내 달라며 찍은 사진이 이것인데, 이 사진이 어머니에게 며느리 얼굴을 소개할 목적의 평범한 인증 사진으로 보이는가 말이다. 촬영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이들의 예심 판사 다테마스 가이세이였다. 재판에서 유력한 증언을 확보하고자 그들에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설과 그들의 굳은 신념과 남다른 태도에 동화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어쨌든 두 사람은 그를 이용해 사진이라는 영구한 기록으로 자신들의 결기를 남기고, 더불어 일본을 향해 조소를 날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는 다름 아닌 박열이기에 가능한 추론인데, 결과적으로 사진이 유출되자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이 결정적 장면조차 '청춘'으로 유들유들하게 소비되니 맥이 빠질 수밖에.

무대 예술만의 실시간 움직임의 미학은 배우들을 통해 극의 빌드업과 폭발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 특히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할 때는 어떠한 허구를 가미하든 캐릭터성만은 명확해야 역사를 극으로 구성한 의미를 돌아볼 수 있음과 동시에 극적 재미를 높일 수 있다.

옥중수기를 통해 발견한 그들의 청춘을 살리고 싶었다 해도 그들의 이야기를 풀자니 결국 일제 항거가 빠질 수 없고, 독립운동을 박열과 후미코만 한 것이 아니니 그들만의 변별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의 시 개새끼가 포함된 넘버조차 안중근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이나 윤동주 시인을 다룬 윤동주 달을 쏘다에 붙인대도 딱히 어색할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왜 박열과 후미코인가 하는 물음표를 지우기 어렵다. 어쩐지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박열과 후미코의 이야기는 영화 박열외에도 지난 2021년 뮤지컬 박열이 초연됐다. ‘222개월이라는 제목은 두 작품과 비교해 직관성이 다소 떨어진다. 앞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뮤지컬 ‘1446’이 이후 세종 1446’으로 변경한 사례만 보아도 직관적인 제목은 대중에게 작품을 쉽고 빠르게 알리는 효과가 있는데, 박열이 가진 최장기 투옥 역사의 기록을 제목으로 내세운 의미는 나름 과감하면서도 반대로 약점이 될 우려가 있다.

이에 다미로 감독은 뮤지컬 박열이 나오고 영화도 박열이 있는데, 그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립투사분들이 감옥에서 고문도 많이 당하고 힘들고, 또 많이 전향한 분들이 있음에도 222개월 동안 어떻게 전향을 하지 않고 버티셨지? 그 점이 나에게는 제일 비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만약 나에게 연인과 마지막 30분의 시간이 남았다면 뭘 할까. 그런데 (두 사람의) 사진에 보면 책을 들고 있지 않나. 그게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책을 보고 있지? 이 작품의 궁금증이 거기서부터 시작되면서, 당신이었다면 어떤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가,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라면서 우리가 더 많이 홍보해보겠다. 해서 그가 222개월 동안 버티고 버텨냈다는,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결론적으로, 뮤지컬 ‘222개월은 같은 역사적 기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또 다른 시선과 해석으로 풀어낸 시도만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파격의 박열을 품지 않고서는 작품이 살 길이 막막하다. 이제 막 초연을 올린 만큼 그들의 청춘을 살리면서도 확고한 캐릭터성과 연출 방향 등을 정립해간다면 향후 뮤지컬 박열과도 다른 작품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사로, 지극히 한국적 소재를 무대에 올린 장시간의 노력은 열렬히 응원할 만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대학로를 필두로 한국적 소재 발굴이 차츰 늘어나는 반가운 추세에 뮤지컬 ‘222개월도 굳건히 제 몫을 해주길 바란다.

한편, 뮤지컬 '222개월'은 오는 115일까지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된다. [공연사진제공=(주)아떼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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