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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뮤지컬 '인간의 법정' 초연, 아쉬움+가능성 동시에

  • 입력 2022.12.04 12:31
  • 수정 2022.12.04 13:08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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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로컴퍼니
사진제공=대로컴퍼니

[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인간의 본질을 묻는 뮤지컬 인간의 법정초연이 아쉬움과 시즌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가운데, 오늘(4) 초연의 막을 내린다.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작가이자 현직변호사이기도 한 조광희의 동명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뮤지컬에서만 20년 활동한 장소영 음악 감독이 처음으로 제작에 뛰어든 작품이다.

인간의 법정은 미래 어느 시기, 인간의 의식과 같은 프로그램을 탑재한 AI 로봇이 존재한다는 설정의 SF 법정물이다. 인간의 의식을 지닌 채 살인을 저지른 AI 로봇 아오’. 인간이라면 곧바로 형사 재판이 열릴 테지만 로봇이기에 형사 재판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오는 자신의 폐기는 곧 죽음이라 여기고, 변호사 홍윤표는 의식을 지닌 AI 로봇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죄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며 형사 재판의 권리를 주장하는 행정 소송을 진행한다. 그를 통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을 되묻게 된다.

# 개막 초반 불거진 혹평, 무엇이 문제였나.

아오가 죽인 이는 그의 주인 한시로. 그에겐 오미나라는 여자 친구가 있다. 한시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토대로 한 AI 로봇을 구매하고, 이후 한시로와 오미나는 아오를 곁에 두고 생활하는데, 지금보다 인간과 같은 활용을 원하면서 아오에게 극 중 불법인 의식 생성기를 추가로 장착한다.

법정에서 드러난 사건의 전말을 보면, 한시로는 호기심에 오미나와 아오의 스킨십을 시도했다. 그를 보며 묘한 질투와 흥분을 느끼고, 기계와 키스라니 께름칙했던 오미나 역시 그런 한시로의 반응이 싫지 않았다. 말하자면 두 남녀의 쾌감을 자극하는 데 아오를 이용한 것이다. 아오의 메모리에 남았을 해당 장면은 줄곧 삭제했지만, 그사이 의식 생성기를 부착한 아오는 어느 날 자신을 한시로로 착각하게 되고, 오미나와 함께 있는 한시로에게 분노해 살인에 이르렀다는 설정이다.

사진제공=대로컴퍼니
사진제공=대로컴퍼니

문제는, 개막 초반 공개된 모습은 오미나가 마치 한시로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성적 피해자로 비쳤다는 점인데, 기이하게도 장면 연출, 배우들의 감정 등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텍스트로만 보면 두 남녀의 단순 동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연출의 오류가 결정타였다.

이 작품은 우선 극 중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품은 근미래라는 설정이지만 극 중 등장하는 로봇 아오는 지금의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지능형 AI까지도 넘어선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사실상 수 천 년이 지나도 아오와 같은 AI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인간도 다 알지 못하는 인간의 뇌를 구현한 수준의 소프트웨어와 인간과 같은 외형으로, 인간의 움직임을 구현할 하드웨어가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굳이 대재앙이나 전쟁과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인류는 먼저 극심한 인구 감소를 겪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가 만연할 수 있고 오히려 자유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연애, 결혼 관계에서의 지금의 도덕적 잣대도, 아이의 부계, 모계도 굳이 따지지 않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또한, 그만큼의 과학 수준이라면 여성은 임신, 출산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다. 체외수정, 인공 배양 등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니 어쩌면 가족이라는 단어는 개념만 남을 뿐, 인간조차도 국가의 인구 정책에 따라 수를 조절하며 번호표를 받고 태어날 수 있다. 더불어 육아부터 교육까지 모두 로봇이 전담하게 되면 인간의 성은 단순한 쾌락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이렇듯 먼 미래를 설정해두고서 2022년의 성인지 감수성을 건드리는 오류를 범했다. 흡사 남자 모형 인형에게 뽀뽀해보라 해서 했더니 남자 친구가 묘하게 흥분하는 게 느껴져 나도 흥분되더라는 건데, 지금 시대라고 이 자체를 욕할 성인이 있을까. 그것을 두고 뮤지컬 인간의 법정에서는 남자 친구가 다른 인간 남자와 스킨십을 강요한 가스라이팅처럼 보여 마치 여성이 피해자인 듯한 느낌을 준 탓에 극 중 재판의 초점이 아오의 재판이 아닌 오미나의 재판이 되어버렸고, 지금의 성인지 감수성에 맞닥뜨리면서 이 재판이 합당하느냐의 논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성인지 감수성이 존재할 시대가 아니며, 그런 시대의 남녀 관계에 있을 법한 지극한 호기심과 자극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었어야 했다.

여기에 인간형 AI 로봇을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합당한가에 관해, 반려동물을 진심으로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듯 인간형 로봇을 인간으로 대할 것인지는 지극히 개인의 결정일 것이다. ‘인간의 법정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의식을 지닌 로봇을 인간으로 법제화할 수 있을 것이냐,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을 가리켜 인간이라고 하느냐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졌어야 했다.

# 그럼에도 시즌 가능성 충분한 뮤지컬 인간의 법정

개막 전 선 공개된 넘버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예매도 순탄했다. 그러나 막상 작품 공개 직후 위와 같은 이유로 대학로 주 관객층인 2~30대 여성 관객들의 광탈’, ‘손절이 이어진 것은 실로 뼈아프다. 그러나 이후 여러 의견을 수렴한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차츰 배우들의 연기 노선이 달라지면서 이해를 끌어올렸다. 개막 초반과 중후반을 직접 확인한 기자의 눈에도 재판 신에서 오미나와 아오의 기류가 달라진 느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해서 더욱 안타깝다. 확실한 연출의 부재가 이렇듯 작품 하나의 흥망을 결정할 수 있음이다. 무엇보다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기존 대학로 주류의 작품들과도 결이 다른 시도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현직변호사인 조광희 작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대본, 장소영 음악 감독의 수려한 음악, 극장의 벽면까지 영상으로 활용해 훨씬 넓은 공간감을 주는 무대 구성, 단 세트 무대를 효과적으로 구분한 조명 등 뮤지컬 작품으로서의 짜임새도 꽤 칭찬할 만하다.

하여, 여전히 숙제로 남은 일부 설정, 대사나 가사의 디테일, 라이브 음악의 효과와 안정성, 단 세트 무대로는 불가피했던 재판 신의 공간 분리 등이 재연에서 해결될 수 있다면 비로소 시즌제를 향한 성공적인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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