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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넘버 ‘작은 꽃’이 대변하는 신뢰 그리고 자신감

  • 입력 2022.09.30 07:22
  • 수정 2022.09.30 08:24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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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차이콥스키의 삶과 음악이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로 재탄생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녹여낸 주옥같은 넘버들의 향연은 단연 이 작품의 백미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작,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음악가 차이콥스키의 삶과 음악을 모티브로,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19세기 러시아에서 자신만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예술가들의 고뇌와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등 대중에게도 익숙한 명곡들을 넘버에 녹여낸 것이 특징이다. 대학로 작품 중에는 최초로 9인조 오케스트라를 도입해 무대 뒤편에 배치하면서 더욱 풍성한 클래식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프레스콜이 열렸다. 시연에서는 푸쉬킨 동상 앞에서’, ‘음악노트’, ‘들려주지 못한 노래’, ‘작은 꽃’, ‘그대여 떠나라11장면을 선보였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클래식 음악계 거장을 다룬 작품인 만큼 음악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음악은 앞서 뮤지컬 살리에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맡기도 했던 이진욱 음악감독이 맡았다. “클래식 대가들의 음악을 만진다는 것이 처음부터 심적인 부담이 많았다.”는 그는 이분들이 굉장히 훌륭한 음악들을 쓰셨는데 그런 멜로디 뒤에 그 멜로디와 흐름이 끊기지 않게끔 뭔가를 만든다는 자체가 굉장히 고민이 많이 됐었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배우분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훌륭한, 노래 잘하시는 배우님들을 만났으니 최대한 뽑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었다. 차이콥스키가 만든 선율 이상으로 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배우들에게 많이 기댔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제 또 김소향 배우와 같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시 못 만나더라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뭔가 뽑아보자고 생각했다.”는 너스레를 보탰는데, 작곡가와 배우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넘버 작은 꽃에 있었다.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발레 외에도 오페라 오네긴’, 러시아 민요 등 다양한 음악을 인용했다. 이진욱 음악감독에 따르면 차이콥스키의 숨은 보석들을 관객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안나의 넘버 작은 꽃은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화룡점정이다. ‘작은 꽃은 한 곡이 1, 2막으로 나뉜 느낌이 들 정도로 벌스와 사비의 분위기를 확 달리했다. 벌스에서는 러시아 민요 검은 눈동자, 사비에서는 차이콥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2막의 꽃의 왈츠를 인용했다. 흥미로운 건 이 사비 부분이다.

꽃의 왈츠는 우리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왈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와도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특히 곡을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메인 구간에서 봄의 소리 왈츠가 왈츠의 1-2-3(강약약) 구조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면 꽃의 왈츠는 관악기가 추임새 효과를 내면서 1-2-3이 숨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해서 훨씬 경쾌하고 다이내믹하다. 그런데 이 곡을 이진욱 감독은 다른 이의 희망을 끌어내고자 하는 나의 내면의 외침 작은 꽃으로 가져왔다. 다시 1-2-3을 택했고 단조 왈츠의 묵직한 느낌을 구조적으로 받쳐준다. 해서 꽃의 왈츠와도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준다

여기까지는 감상하기엔 참으로 좋은 곡이다. 문제는 부르기에 너무 어려운 곡이라는 점이다.

노래는 1부터 100이 호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관현악 작품을 호흡이 필수인 사람이 노래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속도를 조절하는데, '작은 꽃'은 너무 여유를 주면 왈츠가 아닌 왈츠 풍 록 발라드가 될 위험이 크다. 지금과 같이 휘몰아치는 격정은 사라질 것이다. 프레스콜에서 시연한 김소향의 노래를 보면 오히려 작은 꽃꽃의 왈츠보다도 근소한 차이로 빠르게 스타트한다. 연결구간에서 엑센트나 늘임표가 사용된 느낌인데, 이 빠르기가 지금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린다. 그러나 빨라진 만큼 숨 한 번을 채울 곳이 더 마땅치 않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라인을 고음역 대에 반복 배치해 사비 전체를 끌고간다. 이것이 가창자에게 얼마나 큰 위험요소인지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밤의 여왕 아리아를 떠올리면 쉽다. 클래식 문외한이어도 각기 다른 가창자의 동영상 몇 개만 찾아보면 누가 누가 잘하나를 단박에 알 수 있다. 한 번 들으면 각인될 법한 멜로디를 연속해서 부르니 한순간만 삐끗해도 관객에게 바로 들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밤의 여왕 아리아는 숨 쉴 곳은 명확하지 않은가.

작은 꽃은 그것도 모자라 하이라이트로 치달으며 전조(조바꿈)에 크레센도(점점 강하게)로 몰아붙이다 여린 느낌으로 확 수그러든다. 아무리 클래식 작곡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지만 이런 곡이 뮤지컬 넘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차츰 분위기를 끌어올려 포인트 한 점 찍는 곡과는 차원이 다른, 굉장히 어려운 곡이다. 그럼에도 김소향은 이를 열정적으로 소화해 감탄을 자아냈다

실상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넘버는 작은 꽃외에도 다양한 분위기의 고난이도 곡이 상당했는데 이날 배우들의 시연은 일부 개인 컨디션 난조와 같은 이유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와 하모니를 연출했다. 배우들이 연습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 이런 곡을 뮤지컬 넘버로 쓰고, 부르겠다고 나선 작곡가와 배우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절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른 말로, 참으로 엄청난 배짱과 자신감이었다.

김소향은 이 작은 꽃하나로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곡 자체보다는 곡이 담은 메시지 때문이었다고그는 처음에 창작산실에 제출하기 위해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사실 나는 이 작은 꽃이라는 노래 한 곡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내 노래가 내 향기 하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내 마음의 희망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이라는 가사에 너무 많이 감동했다.”면서 포기하고 싶고 너무너무 힘든 순간이 있었음에도, 김소향으로서도 그리고 안나를 연기하는 배우로서도 이것만큼은 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해서 이 곡은 정말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김소향은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한국뮤지컬, 특히 초연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배우로서의 보답이자 신념이라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리딩이라도 1년에 한 작품은 하자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는 앞서 베토벤의 삶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루드윅을 선보인 바 있다. 클래식 음악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이번엔 차이콥스키다. 제작사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허강녕 대표는 그 이유로 '음악의 힘'을 꼽았다. 허강녕 대표는 애초 작품 개발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각국의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감을 찾고자 했다. '만국 공통의 언어'라는 음악, 그중에도 세계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거장과 그의 음악을 찾아 시리즈 형태로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황두수 연출은 초연인 만큼 배우, 스태프 모두 치열하게 만든 작품이라며 빠른 사건 전개가 있진 않지만 차가운 시대에 각자 다른 신념과 절망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여서, 힐링극으로 이 가을에 위안이 되는 작품인 것 같다.”면서 사실은 누구에게나 차이콥스키와 같은 결여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또 이기고 싶은 마음들이 있을 텐데, 그런 지점이 (대중과도) 맟닿아 오늘날까지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문학 잡지 편집장 안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차이콥스키에겐 제자이자 비서이며 동료인 사랑하는 남성 알료샤가 있었으나 알료샤의 입대 후 사망으로 상실감 빠진 채 한 수도원에서 지내게 된다. 이때 비슷한 이유로 수도원에 머물던 안나를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며 음악 작업을 함께하게 된다. 음악적 민족주의에 앞장선 세자르는 이들에게 국가를 위한 음악과 문학을 만들라고 요구하며 억압한다.

차이코프스키 역은 김경수, 에녹, 박규원이, 안나 역은 김소향, 최서연, 최수진이, 세자르 역은 임병근, 테이, 안재영이, 알료샤 역은 김지온, 정재환, 김리현이 출연한다.

에녹은 극의 구성상 차이콥스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오히려 주변 인물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극에서는 주인공이 좀 더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안나, 차이코프스키에서는 주변 인물이 잘 받쳐주고 잘 들어주고, 그 관계 설정을 잘함으로써 극의 완성도가 좀 더 짙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배우들도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박규원은 "유약하고 안쓰러운 인물이 안나를 만나 변화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잘 그려갈 수 있는 차이콥스키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세자르 역의 안재영은 세자르가 흔한 악인이 아니길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원작자도 그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세자르란 인물도 실제로도 음악을 했다. 그저 나라와 민족만을 외치던 인물이 결국 전쟁으로 후회하고 뭔가 느끼는, 두 주인공의 길을 방해한다는 악역으로의 기능적인 부분도 있지만,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방향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좀 더 신경 썼던 것 같다. 해서 넘버 작은 독수리상처 입은 독수리가 들어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테이는 나는 세자르가 한 번도 악역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차이콥스키는 비겁하고 안나는 너무 어리다. '세자르가 가장 어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웃음을 보이면서 예술가는 사실은 조금 순수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사회적인 관계나 위치에 관한 고민보다는 늘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술가의 모습 중 하나인데, 세자르는 그래도 사회생활을 해서 조금 더 시기를 이해하고 쓰임에 대해 고민하는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알료샤 역의 정재환은 “(알료샤는) 처음부터 확고한 캐릭터성이 있었다. 한 마디로 차이콥스키의 뮤즈로 시작했는데 나는 뮤즈라기보다는 영혼의 단짝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차이콥스키가 그 영혼의 단짝을 잃었을 때 오는 상실감으로 음악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생각하고 극에 들어갔다.”고 전하기도 했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이번 초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한 디벨롭을 통해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허강녕 대표는 앞서 루드윅도 처음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발전시키며 공연해왔다. ('안나, 차이코프스키'가) 대학로에서 9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건 처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음악적으로 극적으로 좀 더 풍성하게 다가가기 위해 계획을 잡고 있다. ‘나름의 시작이 이렇게 되었다.’는 의미로 알아주시면 좋겠다. 초연이 끝나고 나서도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조금 미리 말씀드리자면 루드윅이 중국과 일본에 수출돼 공연이 크게 올라가는데, 이번 안나, 차이코프스키도 앞으로 그렇게 해나갈 것.”이라며 성원을 당부했다.

한편, 뮤지컬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오는 10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공연사진 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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