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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선천, 나이 50이 되어도 하고 싶다는 연극 ‘비클래스’

  • 입력 2022.04.08 15:40
  • 수정 2022.04.08 15:49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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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비클래스는 그냥 저의 성장기 같아요.” 드디어 배우로 인정받은 느낌이다. 나이 쉰 살이 되어도 할 수만 있으면 치아키를 연기하고 싶단다. 연극 비클래스에 출연 중인 배우 한선천의 이야기다.

서울 대학로 브릭스 씨어터(구 콘텐츠 그라운드)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비클래스(골든에이지컴퍼니 제작/ 박인선 프로듀서)’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만 갈 수 있는 예술인 양성학원 사립 봉선예술학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B클래스에 속해 있는 네 명의 학생이 실력이 아닌 능력과 조건만으로 평가받는 봉선예술학원의 기준을 넘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합동 졸업공연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위해 A클래스로 올라가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이 목표인 작곡 전공 김택상,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식물인간이 된 누나와 단둘이 살아가는 보컬전공 이수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의 결별로 한국의 먼 친척 집에 살고 있는 순수하지만 외로운 영혼의 소유자 치아키, 유명한 음악가인 아버지와 천재 피아니스트인 형으로 인해 강박증을 앓고 있는 피아노 전공 이환 등 네 친구가 주인공이다.

한선천은 극 중 치아키를 연기한다. 언뜻 소심하고 엉뚱해 보이지만, 눈치 백 단 B클래스 중재자에 뛰어난 실력의 무용학도다. 부모의 결별이 낳은 결과가 극심한 외로움인 만큼 친구들의 다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모자란 듯했는데 촌철살인을 내뱉는 통에 저놈 원래 똑똑한 거 아니야?!’로 한바탕 소동이다.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한선천은 이번 비클래스로 연극에 처음 도전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다. 실제 자신과 지극히 닮은 듯 다른 치아키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극의 긴장과 완화를 조절하는 역할에 무리가 없고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애드리브에 반응하는 순발력도 안정적이다. 특히 극 중 선보이는 졸업공연에서는 본직인 무용으로 또 한 번 관객을 홀린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겸 현대무용가 한선천의 이야기를 전한다.

치아키는 자신의 외로움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능청스럽게 친구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인물이어서 연기력에 무용 실력까지 필요한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작품 관계자들은 한선천의 연기와 춤을 보며 됐다!’ 싶었다고 한다. 출연을 결정할 때만 해도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첫 대본리딩에서 어디도 끼지 못하는 듯한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고. 동료 배우가 지금 그대로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후 오인하 연출의 결정적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터졌다고 한다.

대본을 보고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게 됐는데, 첫 대본리딩에서 뭔가 외로운 기분이 드는 거예요. 제가 뭘 해도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했어요. 그래서 정헌이한테 혹시 이상하냐고 물었더니 아니. 내가 생각했던 치아키랑 너무 똑같은데? 잘하고 있어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저는 계속 저한테 믿음이 없었어요. 그러다 한 번은 연출님께서 선천이 너 진짜 물건이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고, 난 네가 잘할 줄 알았다. 네가 너를 믿으면 되는데 너는 너한테 믿음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너무나 멋있고, 진짜 배우로서 인정한다’, 딱 그 말씀을 해주시는데 주책맞게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웃음), ‘, 나는 왜 나를 못 믿었지?’ 정말 감사했죠.”

그만큼 이번 비클래스는 스스로 배우 한선천을 믿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선천은 2014년 뮤지컬 킹키부츠의 엔젤로 뮤지컬에 데뷔해 이후 세 번의 무대에 섰고, ‘컨텍트’ ‘배쓰맨’, ‘젊음의 행진’, ‘432 헤르츠등에도 출연했다. 무대에서 가장 빛나던 사람인데 비단 새로운 무대에서는 좀처럼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늘 최선을 다하지만 부족함 또한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인하 연출의 인정은 그동안 마음 어딘가에 응어리져 꺼내지 못한 속앓이를 털어낸 큰 응원이었을 터다.

공연하면서 매 작품 많이 배우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저도 저를 알고 제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공연 끝나고 나와서 팬분들 반응을 보면 딱 알아요.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잘 본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웃음). 그런데 이번 비클래스는 저를 아예 처음 보신 분들도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시니까 진짜 감사했죠. 그리고 항상 고민이, 제 무용 공연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데 요즘 시국도 그렇고 기회가 많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연기도 할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고, 그런 것들을 같이 보여드릴 수 있어서 이 작품이 저에게 와줬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비클래스는 사실상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이다. 한선천은 겉으로는 도회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의외의 잔망이 장착된 배우여서, 한선천이 연기하는 치아키가 딱 한선천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자신과는 다르게 감정 변화의 폭이 넓어 특히 감정선에 신경 썼다고 한다.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그냥 저예요(웃음).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 치아키가 되게 선명하게 그려졌어요. 성격이나 그런 것들이 어렸을 적 나그대로 하는 거예요. 친구들과 있을 때 저의 성격이랑 정말 똑같고, 지금 치아키를 연기하고 있는 것들이 제가 맨 처음 만들었던 치아키예요. 연습할 때 은일 치아키가 다른 배우들과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서 그 분석을 좀 참고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넣어보기도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속된 말로 말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더 믿음이 없었다가 그냥 내 스타일대로 해보자 했는데 그게 잘 맞더라고요. 반대로 어려웠던 점은, 평소 저는 그냥 잔잔하거든요.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치아키는 럭비공 같아요. 감정의 기복이 굉장히 넓고 한 번에 연기하는 사고 자체가 확 바뀌어야 해서 그런 감정의 100을 해보자. 기쁠 땐 정말 기쁘게, 슬플 땐 정말 슬프게, 그런 극과 극의 감정을 100으로 끌어올려 보자 했어요. 처음에는 되게 어려웠는데, 연출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그런 부분을 이번에 또 많이 배우게 됐고요. 이번 작품에서 가장 감사한 분을 꼽으라면 정말로 연출님이세요.”

핫한 무용수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팬들에게 연극 작품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들을 정도라니 감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같아선 50살이 되어도 비클래스를 하고 싶단다. 인터뷰 중에도 이 대목에서는 한껏 신이 난 듯했다.

정말 오랜만에, ‘B클래스하면서 무대에 서는 게 이렇게 행복했던 거였구나다시 깨달았어요. 그리고 이 공연은 한 번 할 때마다 굉장히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면 치아키는 극 중에서 제일 눈치도 빠르고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또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굉장히 똑똑한 친구여서 누가 화를 내면 치아키는 더 밝게, 다른 이야기를 해가면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저 자체가 공감 능력이 조금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이 작품 연습하면서부터 선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너희들 속고 있는 거야하는데(웃음), 이 작품은 정말로, 그냥 한선천의 성장기 같아요. 첫 공연 끝나고 연출님한테도 저 진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정말 위로받는 느낌이어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거든요. ‘진짜 내가 마흔, 쉰 살이 돼도 얼굴만 안 늙으면 이거 계속하고 싶다’, 그럴 정도로 정말 좋아요. ‘얼굴을 좀 당겨야 하나, 주사를 좀 맞아야 하나(폭소)’. 지금 저는 많은 작품에 출연도 하면서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이 맞는데, 지금 마음으로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아무런 욕심도 안 나요. 그냥 되게 평온해요.”

그러한 배경에는 동료 배우들의 응원도 컸다. ‘비클래스팀은 유독 팀워크가 좋다고 하는데 좋은 작품, 훌륭한 제작진, 응원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뽐낼 수 있는 캐릭터를 한 번에 만난 비클래스는 정녕 큰 행운이다.

모난 사람이 없어요. 성격이 다들 정말 좋고, 선생님 역할 분들을 빼고 정헌이랑 제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저보다 어린 친구들인데도 극 중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어리다는 느낌이 아니고 정말로 다들 친구 같아요. 이렇게 그냥 평생 친구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특히 제가 저를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서희 누나나 정헌이, 호림이가 정말로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네가 짱이야', '잘하고 있어' 정말 계속 매일매일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까 저한테 갇혀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금이 가듯 깨지는 게 느껴지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거든요. 계속 그렇다 그렇다 하니까 정말 그렇게 최면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리고 가장 감사한 연출님을 만났고 좋은 스태프분들도 만났고, 좋은 캐릭터를 만났고. 이 작품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른넷에 고등학생 역할이었지만 고민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교복을 입고는 아차 싶었던 모양이다.

저는 사실 (고민) 없었거든요. ‘? 나 할 수 있잖아했는데(웃음), 가봉할 때 다 같이 교복을 입었는데, 다들 잘생긴 친구들이고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그때부터 약간 위화감이.. 꼭 교복 입은 아저씨 느낌(폭소)? 사진을 찍어도 친구들은 얼굴에서 광이 나더라고요. 딱 봐도 어린 느낌이 나서, 정헌이랑 둘이 한쪽 구석에서 야, 우리 어떡하냐막 그랬는데, 다행히 공연에서는 그냥 친구들로 봐주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사진제공=골든에이지컴퍼니

한선천은 한양대 재학 중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컨템포러리 시니어 남자 부문 1위를 차지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을 정도로 탁월한 기량의 무용수다. 오인하 연출은 연습실에서 한선천의 춤을 처음 봤을 때 “큰일인데. 좀 못 해야 하는데 너무 잘하는데”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극 중 B클래스에 모인 학생들은 단지 실력이 모자라 B클래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정이어서 한선천은 오랜만에 마음껏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관객 반응도 호평 일색이건만 안무를 다듬는 과정에서 춤에 어려움을 느꼈다는 의외의 고백도 있었다.

“심세인 안무가님이 초연부터 안무를 계속해주셨고, 무용수와 맞게끔 안무를 바꿔주셔서 은일이와 저도 안무가 조금씩 다른데, 사실 저는 무용수로서는 다른 모든 안무가가 원하는 움직임을 다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오랜만에 안무가님하고 작업하면서 저 스스로한테 좀 화가 났었어요. 안무가님은 끊을 때 더 확실하게 끊고 힘 있을 때 더 힘 있게, 뭔가 깨끗하지 않은 날 것 같은 느낌을 원하시는데 저는 부드럽고 가벼운, 그런 스타일이 강하거든요. 끊는 게 잘 안 되고 날 것이 안 나오고, 내 스타일이 아닌 건 잘 안 되는 거였더라고요. 해서 최대한 원하시는 느낌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면서 하고 있는데, 그래도 안무가님이 봤을 때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겠죠(웃음).”

한선천은 뮤지컬 ‘안테모사’, ‘개와 고양이의 시간’ 등에서 안무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작품의 대장은 연출”이라며 연출의 의도와 작품에 맞춰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안무를 만든다고 하는데, 제작진이 되어보니 작품 전체를 파악하는 시각도 넓어졌다. 전문 무용수가 아닌 배우들이 수행 가능한 동작을 고려해야 하고, 아니다 싶으면 빼고 더하기도 일쑤여서 뜻밖에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워크숍이 큰 도움이 되더라고. 안무가로 활동하며 배우에게 도움이 되었는데 무용수로 레슨을 했던 것이 또 뮤지컬 안무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역시 세상 모든 경험은 버릴 것이 없는 모양이다.

“배우로 출연할 때는 어떻게든 내 것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는데 안무가로서는 많은 것들을 봐야 하는 것이 또 다르더라고요. 제작하고 만드시는 분들이 더 부담이 많겠구나 하는 것도 느끼게 되고, 무엇 때문에 이런 장면을 쓰고 왜 이런 요소가 필요한지, 그런 것들을 좀 더 집요하게 보게 되고, 이건 배우로서도 정말 큰 도움이 돼요. 그리고 안무를 만들면 배우들에게 동작을 가르치고 훈련하는데,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빼고 넣고 다시 배워야 하잖아요. 그럴 때 의외로 워크숍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웃음). 입시생 레슨은 동작 하나만 해도 바로 알고 따라 하는데 일반인 레슨은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드려야 하니까, 그걸 한 2, 3년 하다 보니까 배우분들에게도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어떤 눈높이로 알려드려야 하는지 진짜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웃음).”

지금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 시대다. 가수는 노래만 하고 배우는 연기만 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태우던 때 이야기다. 한때 ‘무용만 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지금 확실한 건 연기도 무용도 놓고 싶지 않다. 그를 발판으로 더 큰 꿈을 향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이번 작품으로는 연극에 첫발을 내디뎠고, 또 무용수로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 현재 저를 필요로 하는,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정말 즐거워요. 다만 더 많은 곳에서 저를 필요로 할 수 있게, 저의 개발은 꾸준하게 하고 있는데, 그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니까 계속해야겠죠.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킹키부츠’를 그냥 좋은 경험으로만 여기고 계속 무용을 했더라면 배우로서 지금의 저보다 좀 더 좋은 입지를 다졌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연기가 즐겁고 좋거든요. 평생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것, 그것도 변함없어요. 해서 지금은, 내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언젠가 내가 만든 무대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미술, 노래, 춤, 연극, 그런 것들이 혼합된, 쉽게 말해 ‘컨택트’ 같은 작품, 또는 스토리가 있는 ‘태양의 서커스’ 같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요. 순수예술 같지만, 대중 예술 같은 느낌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게 목표입니다.”

한편, 연극 ‘비클래스’는 오는 5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브릭스 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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