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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루드윅' 이주광, 완벽한 베토벤이 되기까지

  • 입력 2019.04.29 11:00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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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첫인상은 마초, 그러나 생각외로 그는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올해 16년 차 배우 이주광의 이야기다. 제법 불편할 법한 시시콜콜 가정사부터 지금의 자신을 완성하기까지 들여온 노력에 자부심도 감추지 않는다. “자 그럼 다음 질문”으로 환기하기 전에는 이야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의 제약이 없다면 하루 온 종일 그의 수다가 이어질 듯했다. 솔직함 99%에 허세도 한 스푼, 서글서글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다.

이주광은 현재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추정화 연출, 과수원컴퍼니 제작/ 이하 ’루드윅‘)’에 출연 중이다. 루드윅은 베토벤의 풀네임 Ludwig van Beethoven에서 우리식 발음으로 칭한 이름이다. 이 작품은 ‘악성(樂聖)’ 베토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존재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했던 ‘인간’ 베토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주광은 지난해 초연에서부터 ‘루드윅’역으로 열연 중이다. 지난 23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주광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이주광은 김주호와 초연에서부터 ‘루드윅’으로 출연 중이다. 창작 작품의 초연인 만큼, 특히 베토벤이라는 남다른 인물을 연기하게 되면서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자신의 젊음을 가리기 위해 체중을 불렸고 4번의 탈색에 염색까지 겸해 베토벤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흰머리를 완성했다.

“모든 제작진, 스태프들, 배우들까지 워낙 초연부터 작품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고 저 역시도 베토벤 하면 정말 유명하고 존경받는 예술가, 또 베토벤 하면 대중이 떠올리는 많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좀 더 가깝게, 좀 더 베토벤답게 연기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서 그것을 중점으로 준비하고 연습했던 것 같고요. 일단 제가 30대 후반이기 때문에 50대의 베토벤으로 보이려면 어쨌든 외모부터 비슷해 보이고 싶었어요. 처음 딱 봤을 때 이주광이 아닌 베토벤으로 보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체중도 불리고 탈색도 했는데, 탈색을 한 4번 하니까 지금은 머리카락을 만지면 뭔가 제 머리카락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빗자루를 만지는 느낌?(웃음).”

1827년 베토벤 사후 172년에 이르러 그의 머리카락에서 일반인의 100배가 넘는 납 성분이 검출되면서 그의 사망 원인이 납 중독이라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베토벤은 20세부터 극심한 소화 장애와 복통을 앓았고 30대 초반에 청력을 상실하기 시작해 42세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56세에 사망하기까지 신경과민, 만성간염, 우울증 등을 앓았다고 알려지는데, 이것이 공교롭게도 납 중독의 증상과 일치한다고 한다. 이주광은 그러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내면을 연기하기 위해 외적 요소에서도 완벽하게 베토벤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간 경화가 복수가 찬다고 해서 초반에는 일부러 배를 내밀고 연기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안 해도 될 정도로 살이 쪘지만요(웃음). 또, 베토벤 사망 원인이 납 중독이었다는 설, 그랬을 때 어떤 심리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나이 든 사람의 행동이나 걸음걸이는 어떤지, 귀가 안 들리는 분들이 어떻게 적응해나가는지, 그런 것도 많이 참고했고요. 그러다 실제로 이명이 와서 ‘어, 이게 뭐지?’ 했어요.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모르겠는데 ‘피-잉’ 하는 소리가 연기할 때나 심지어 사인을 하다가도 가끔 와요. 그리고 귀가 안 들리면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안 들리니까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운 거죠. 해서 청력을 잃어갈 때 소리를 조금씩 크게 하면서 차이를 두려고 했어요. 보는 분들이 ‘아 저 사람이 안 들리니까 저렇게 말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요. 그리고 워낙 자부심이 컸다고 해요. 누가 자기를 욕해도 자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신경도 안 썼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최대한 많은 것들을 조사했고, 좀 더 극화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를 연기하기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래야 관객들이 집중을 놓치지 않고 어느 순간 저를 그냥 베토벤으로 보실 수 있겠다 싶었죠.”

극 중 ‘루드윅’은 가상의 인물인 소년 ‘발터’를 만나게 되는데, ‘발터’에게서 자신과 같은 재능을 발견하지만 이미 청력을 상실해가던 ‘루드윅’은 그를 돌려보낸다. 이후 조카 ‘카를’에게 집착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 하지만 ‘카를’은 ‘루드윅’의 강압적 교육과 자신의 한계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그의 곁을 떠난다. 그 둘과의 관계는 ‘인간’ 베토벤의 서사와 고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방법도 표현하는 방법도 모르는 거예요. 무조건 때린다고 폭력이 아니라 너무 과한 사랑도 어쩌면 폭력일 수 있겠다. 아버지의 교육이 그렇게 싫었건만 정작 카를에게 자신이 그렇게 해요. 유서를 쓴 이후에 명작도 막 쏟아져나오고 사람들의 갈채도 받지만, 발터를 가르치지 못했기에 카를에게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 또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주려는, 그리고 우리 음악가 집안을 이을, 베토벤의 음악을 이어줄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본인은 본인이 선택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카를을 선택한 거였죠. 해서 유독 집착했던 거고 카를은 그 압박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고요. 결국은 베토벤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이고 그도 가족을 사랑한 구성원이었다는 것. 그러나 방법을 몰랐고 달랐던 거죠. 사실 베토벤 하면 그의 업적만 보여줘도 ‘와~’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어쩌면 베토벤의 보이기 싫은 부분까지 드러내는 작품이에요. 해서 부모님이나 아이들, 어떤 연령층이 보셔도 각자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주광의 삶이 어쩌면 베토벤과 닮아 있었다.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 그리고 그 곁에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가 계셨다. 뮤지컬 배우가 되는 걸 극구 반대하셨다면서도 어려서는 손님들 앞에 불러 종종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사춘기 감성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싫었지만, 노년의 ‘루드윅’을 연기하려니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최고의 롤 모델이 됐다.

“베토벤을 연기하면서 저희 아버지의 것들을 많이 쓰고 있어요. 성격이 되게 비슷하셨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지금으로는 학대라고 할 정도로 어려서 맞기도 많이 맞았고 평생 미안하단 말씀 안 하시는 분이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노래를 시키기도 하셨고, 저는 너무 싫었죠. 사춘기 감성에 빨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뭔가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를의 마음도 너무나 이해가 되고 그 둘의 이야기가 공감되면서 뭔가 나에게 온 운명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해서 이 베토벤에 아버지를 대입하면 그렇게 해도 충분한 베토벤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하신 거였지만 표현을 못 했고,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게 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굳게 믿으셨던 건데, 지금 그걸 마음껏 쓰고 있어요. 아주 더 신랄하게, 아버지가 보시면 막 부끄럽게. 저는 아버지가 늘 보실 것으로 생각하면서 연기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모든 것들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작품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저도 그런 작품이 되길 바랐고요.”

아버지와의 담판 끝에 배우가 됐지만, 부자의 평행선은 계속됐다. 2003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마침내 뮤지컬 무대에 입성했건만 아버지가 그의 작품을 처음 관람한 것은 2010년 뮤지컬 ‘헤드윅’ 부산 공연이었다고 한다.

“제가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굉장히 반대하셨는데, 아버지와 내기 끝에 운 좋게 그해에 데뷔하게 됐어요. 그 후에도 작품은 안 보셨는데 처음 보신 게 부산에 지방 공연으로 간 ‘헤드윅’이었어요. 아버지한테 ‘헤드윅’은 작품이며 음악이며 그냥 사탄이고 마귀예요(웃음). 가뜩이나 남자가 여자 옷을 입어? 상상할 수도 없는 거죠. 당연히 좋은 소리는 없겠다 생각하면서 쿨한 척 밥 먹으러 갔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별말씀 없으셨고 나중에 누나가, 아버지가 보는 내내 자랑스러워하시더라고, 아무것도 도와준 거 없는데 혼자 저렇게 하는구나, 약간 놀란 듯이 잘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다 싶었죠. 그것도 그뿐이었어요. 그 뒤로도 아버지를 보진 않았거든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주광에게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루드윅’의 후회가 ‘발터’와 ‘카를’이라면, 이주광의 후회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사실 저는 후회를 잘 안 하는 성격이에요. 뭘 해도 그냥 ‘내가 선택한 거니까 후회하지 않아’ 그런 편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제가 곁에 없었어요. 정말 카를처럼 꽤 오랜 기간 아버지와 안 보고 살았어요. 그리고 그때가 ‘고래고래’ 할 때였을 거예요. 양평의 요양원에 계셨는데 갑자기 새벽에 돌아가셨거든요. 해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죠. 그게 저한테는 유일한 후회가 될 수도 있어요. 막상 돌아가시니까 그 미움이 이상하게 그리움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냥 죄송스럽고 그립고 보고 싶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나면 가서 뵙고 와요. 가면, 살아계실 때 나 못 살게 했으니까 이제는 나 좀 잘 살게 해달라고 하고(웃음).”

그렇다면, 인간 이주광을 흔드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16년째 뮤지컬 작품만 하고 있는데, 저는 작품을 위한 삶을 사는 느낌이에요. 이런 탈색을 한 것도 사실 일상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웃음). 그냥 작품을 위한 컨디션을 위해 무조건 잠을 몇 시간을 자고, 며칠에 한 번씩 이비인후과에 가고, 사람들도 덜 만나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는 애당초 끊었고. 저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능력치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겹치기 출연을 못 하거든요. 해본 적도 없고. 해서 작품을 하면 최대한 그 작품에 맞춰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이걸 어떡하지?’, ‘공연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보러오신 분들한테 너무 죄송한데 어떡하지?’ 혼자 부들부들 떨죠(웃음). 누군가에게는 그 날의 공연이 생애 처음 보는 공연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고, 저는 매회 120%를 쓰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최대한 그걸 지키고 싶고 체력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해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그때 굉장히 흔들리는 것 같긴 해요. 좀 약해지기도 하고요.”

※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인터뷰로 만난 배우 이주광의 이야기는 후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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