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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서이말등대 가는 길

  • 입력 2013.05.30 11:18
  • 기자명 유형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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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공곶이는 이제는 너무도 널리 알려진 관광지이다. 봄이 되면 갖은 매체에 단골처럼 소개되면서 찾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온다. 그러다 보니 눈으로 보고 가는 풍경도 휘익 차가 지나가듯 대충 휩쓸고 간다. 공곶이 둘레와 걸어서 가는 길을 제대로 알고 누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으나 이런 길을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문듯 하다.
83차 여행은 언제나 그랬듯이 불편하게 버스를 타고 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거제 와현(臥峴)고개(누우래재)에서 서이말 등대를 거쳐 공곶이를 들른 다음 예구마을을 돌아 저구마을로 가는 10km가 넘는 길이다.

오전 서울에서 일찍 출발한 버스는 4시간이 넘게 허겁지겁 달려 낯설지 않은 거제 고현버스터미널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숨이 막힌다. 아직은 쌀쌀하다 생각하며 출발했는데 내려서니 훈풍이 콧속으로 비릿한 갯 내음과 함께 달려들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모든걸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내 감각기관은 이내 익숙해지려고 서두르지만 성급한 내 콧속은 이내 간질함을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품어낸다. 이 지독한 비염.

우선 허기를 채우러 터미널 근처 국밥집에 들어섰다. 아주머니가 웃음기 잃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원래 이리 더워요? 무지하게 덥네.” 하며 일행이 물었다. “우리는 종일 실내만 있어서 밖은 어떤지 몰라요.” 무미건조한 답이 돌아온다. 당황한건 우리 일행이었다. 하지만 아차차 여기 경상도지하며 이내 평정심을 찾는다.

국밥은 구수하니 텅빈 속을 채우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그 무표정한 아주머니가 갑자기 우리 식탁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로 떨어진 반찬을 채워주곤 하셨다. 그렇다 겉은 무표정하지만 어느 정도로 속정이 깊은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나갈 때 무덤덤한 말로 문 열고 내다보시며 여행 잘하고 가시라고 인사를 건냈다.

고현에서 24-1번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가다 와현고개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 서이말등대 표지가 일러주는 들머리로 길을 걸어 올라갔다. 조금 오르니 길 옆으로 전망 좋은 곳에 데크와 벤치가 있었다. 바로 아래 와현해수욕장과 멀리 구조라항이 한눈에 보이고 외도와 해금강도 멀리 눈에 들어 왔다.다시 길을 재촉을 했다. 길은 한적하고 그늘이 많지 않았지만 시원한 해풍으로 땀이 날 겨를이 없었다. 신나서 떠들다가도 이내 조용하게 개인적인 생각에 몰두하고 또 다시 시끌벅적하게 걸어 올라갔다. 오가는 차량도 극히 적어 잃어버리면 한대 지나갈 뿐 길 전체를 전세 낸 듯 걸어 올라갔다. 먼 곳으로 초소가 보였다. 그 아저씨도 긴장을 한듯하였으나 등대로 가는 관광객임을 감지하고서는 경계심을 풀고 묻지도 않는 말에 이말 저말 참견을 하였다. 간단한 인사를 건넨 우리는 초소를 지나 이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좌측으로 탱자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어 사진을 찍는데 멀리서 “그거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 하며 경비아저씨가 아직도 우리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네” 우리는 대답을 하고 어지간히 심심하신가 보다 하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여기는 잠시 바다도 모습을 감추고 숲만 보며 걸어 들어갔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보인다. 홀아비꽃대, 으름덩쿨, 미나리냉이, 큰꽃으아리, 천남성, 큰꽃마리, 동백... 그야말로 봄철의 꽃들이 길옆으로 서로의 미모를 자랑하듯 뽐내고 있다. 숲속으로는 까마귀떼들의 울음만이 파도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으며 오랜만의 자연을 만끽하며 걸었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와현봉수대 갈림길에서 우리를 기다린 것이다. 봉수대를 다녀오기로 하고 다시 산으로 올랐다. 봉수대 가는 길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산길이었다. 조금 오르니 일행들이 일제히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이제 파릇파릇하게 잎을 내민 나뭇잎 아래로 그늘사초들이 파란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그늘에 묻혀 가려진 바다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나무는 이내 침엽수로 바뀌더니 커다란 해송들이 꽉 들어차있다. 해송지대를 지나니 갑자기 확 트인 장소가 나왔다. 망산 와현봉수대이다. 방호벽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석축도 그대로 남아 있는 편이고, 출입 계단시설도 잔존한다. 상부는 붕괴되어 있는 상태인 것 같고, 규모나 높이 석축상태를 알아볼만한 상태는 아니다. 그곳에 올라서 보니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다.다시 서이말 등대로 가는 길은 갖은 새소리와 아래 바닷가 철썩거리는 물결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피어서도 져서도 아름다운 꽃들과, 윤기가 흐르도록 빛나는 푸른 잎은 눈을 통해 들어와 몸과 마음으로 누리는 호사를 한다.그렇게 봉수대 까지 다녀온 5km의 끝머리에는 군부대가, 그 못 미쳐서는 서이말 등대가 있다. 지형이 꼭 쥐(鼠)의 귀(耳) 끝(末) 모양이라 이리 이른다는 서이말등대는, 앞과 양옆 세 방향이 트여 있다. 삼면 바다를 향해 등대는 길라잡이 불빛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외로웠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개한마리가 살갑게 맞아주며 계속 따라 다닌다.서이말 등대는 1944년 1월에 설치 되었으며, 총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로 세워졌다. 이 등대에서는 20초마다 1번씩 20마일(37km)밖에서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어 거제도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항로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등대를 보고 돌아 나오다 1km 지점에서 벧엘수양원쪽 말고 10시 방향으로 공곶이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무 조금 있는 숲길이구나 하였는데 걸어 보니까 진짜 거제 여행의 백미였던 길이었다. 길은 가파르지도 않은데다 풍성하게 그늘이 내려앉아 있다. 또 바다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길은 부드러운 황토여서 더욱 좋았다. 그러다 낙엽이 남아 있는 좁다란 오솔길이 공곶이와 이어진다. 이길이 맞나 싶을 정로로 한적하고 때 묻지 않은 길이었다. 오후에 한차례 비 예보는 있었으나 그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짙푸른 나뭇잎 그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늘 속에서 한동안을 걷다보니 앞이 환하게 트였다 공곶이에 다다랐다.공곶이는 강명식 어르신 부부가 50년 넘게 수선화와 종려나무와 선인장과 동백 등을 가꿔온 곳이라고 한다. 꽃과 숲과 바닷가 몽돌과 바다와 바람으로 이름을 얻었고, 평일 휴일 구분없이 많은 이들이 찾는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예구 마을로 가는 길, 철이지나 거의 져버린 동백숲 터널로 올라간다.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고 내 숨만 눈 밑까지 차고 올라 눈으로도 보일 지경이다. 거의 숨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려는 찰나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그 길을 내려오니 예구마을을 도착할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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