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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기억의 해각', KBS 단막극 가치 입증한 명작..문근영X조한선 美친 몰입감

  • 입력 2021.12.25 09:56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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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KBS 드라마스페셜 2021 '기억의 해각' 캡처

[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그야말로 미친 몰입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한 설정으로 짙은 여운을 자아낸 대본, 과하지 않은 연출, 밀도 높은 배우들의 열연까지. '작감배' 3박자의 완벽한 조합으로 탄생한 '기억의 해각'이 KBS가 고집한 단막극의 가치를 재차 입증하며 2021 시즌의 대미를 장식했다. 

지난 24일 방송된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단막극 ‘기억의 해각’(연출 이웅희/ 극본 박재윤)은 알콜릭(알코올 중독)이던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던 아내가 도리어 알콜릭이 되어 치유되지 못한 상처 속을 헤매다 미지의 소년을 만나 남편에 대한 사랑, 그 지독한 감정과 이별하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남편 석영(조한선 분)과의 낡고 초라해진 사랑과 이별하려는 은수(문근영 분)의 고군분투가 큰 줄기로, '기억의 해각'이라는 제목은 사실상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과거 알콜릭에 빠져 있던 석영과의 다툼으로 유산을 겪은 은수는 현재 본인이 알콜릭에 빠져 있다. 과거 석영은 은수의 지극한 간호 덕분에 알콜릭을 면했으나 은수의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을 뿐이었다. 허망한 과거를 뒤로 하고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한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해각(강상준 분)이다. 해각은 은수를 구해준 이후에도 은수가 힘겨운 순간엔 늘 곁에서 위로했고, 함께 떠나기로 약속한다. 

석영은 술에 의존는 은수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고 한편 지쳐간다. 그런 석영을 파고든 이는 석영이 일하는 공장 인근 백반집 종업원 미숙(이진희 분)이었다. 석영은 은수를 사랑한다며 미숙을 외면했으나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은수와 석영의 균열은 심화된다. 

은수의 상황은 더욱 극으로 치달았다. 아침부터 술을 마신 은수는 걱정을 늘어놓는 언니를 앞에 두고 마루에 무기력하게 몸을 기댄 채 소변을 보고 만다. 은수를 찾아 달려온 석영은 괜찮다며 옷으로 가려주지만 은수는 석영에게 여기까지 하자고 말한다. 

은수는 해각과 떠날 결심으로 펜션 앞 바닷가를 찾았다. 다시 은수를 찾아 나선 석영은 은수가 머물었다는 펜션에 들어서는데, 폐가와 같은 그곳엔 과거 자신의 밴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해각밴드'. 

▲ 사진=KBS 드라마스페셜 2021 '기억의 해각' 캡처

그렇게 충격적인 반전이 모두 드러났다. 은수를 위로했던 해각은 음악을 사랑하는 밝고 순수했던 청년 석영을 기억하는 은수의 허상이었고, 그런 석영에게 위로받고 싶은 은수의 마음이었다. 해각밴드라는 이름도 당시 은수가 제안한 이름이었다.

은수는 해각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생각에 부풀었으나 해각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졌다. 혼란스러운 은수 앞에 나타난 건 석영이었다. 은수는 해각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석영을 부정하지만, 석영은 과거는 없다며 은수를 다잡는다. 은수는 결코 인정할 수 없고, "그 애가 너무 보고 싶다, 그 애 좀 데려오라"며 허망함 속에 절규했다. 그런 은수를 품에 안은 석영 역시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오열했다. 잠시 후 석영은 은수를 업고 현실로 걸아왔다. 석영의 등에 업힌 은수의 시선에 과거 자신과 석영의 빛나는 청춘이 펜션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후,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 은수에게 불현듯 해각이 찾아왔다. 은수는 네가 옆에 있으면 일을 못 한다며 가라고 하지만 해각은 계속 따라다니겠다고 한다. 은수는 체념한 듯 "그러든지 그럼"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폭풍이 몰아친 자리에 잔잔한 희망이 일렁이는 순간이었다. 

그렇듯 '기억의 해각'은 어쩐지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기발한 구성과 반전을 더해 짙은 여운을 자아냈다. 최근 시점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두 사람의 사연과 상황을 설명하고, 은수의 기억 속 석영에 관한 판타지를 해각이라는 판타지로 풀어내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은수의 처절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특히 문근영, 조한선의 활약을 빼고는 '기억의 해각'을 말할 수 없다. 감정의 극한을 오간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은 매 순간 시청자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밝힌 문근영은 문근영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를 여실히 증명했고, 제작발표회에서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배우로서는) 행복했다"고 누차 언급했던 조한선의 말은 저절로 이해됐다. 훌륭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높은 밀도는 작품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더불어 신비로운 청년 해각을 연기한 강상준은 은수의 환상을 완벽하게 표현하면서 이 치열한 작품 속에 여유를 주었다. 

그렇게, 완벽한 '작감배' 3박자 속에 단막극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빛난 '기억의 해각'은 KBS 드라마 스페셜의 또 하나의 명작을 남기며 내년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신선한 시도, 참신한 인재 발굴, 한 편의 훌륭한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 KBS 드라마스페셜의 존재 이유다.

한편, KBS 드라마 스페셜 2021은 ‘기억의 해각’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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