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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정화, 10년 만에 내 발로 찾아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입력 2021.10.29 10:33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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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10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배정화를 인터뷰로 만났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40년대 미국 남부의 몰락한 대지주의 딸 블랑쉬 드보아가 꿈같은 자신의 과거를 열망하며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에 살아가다 결국 현실적, 물질적 욕구에 충실한 스탠리에 의해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1947년 초연돼 이듬해 퓰리처상을 차지했고, 1951년 제작된 비비안 리, 말론 브란도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국내 대중에도 친숙하다. 이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블랑쉬 역에 박해미, 김예령이 출연하고, 그의 동생 스텔라 역에 배정화와 임예나가 활약하고 있다.

연예투데이뉴스와 인터뷰로 만난 배우 배정화는 SBS 드라마 ‘해치’의 천윤영/복단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으나 그는 이미 연기 경력 십수 년의 베테랑 배우다. 동국대 연극학과 졸업 후 곧바로 연극 무대에 진출해 2006년부터 5~6년간 크고 작은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무대를 경험했다. 연극 ‘폭풍의 언덕’, 이강백 희곡 ‘보석과 여인’, ‘오월엔 결혼할거야’ 등에 출연했고, 2007년에는 뮤지컬 ‘넌센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연극 무대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2013년 개봉 영화 ‘콘돌은 날아간다’에서 곧바로 주연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위대한 소원’, ‘목격자’, ‘원더풀 고스트’, ‘기방도령’ 등 영화만 여덟 작품에 출연했고, 2016년 드라마 ‘기적의 시간 로스타임’으로 드라마 데뷔 후에는 ‘사랑이 오네요’, ‘보이스’, ‘프리스트’, ‘해치’, ‘왜그래 풍상씨’, ‘본 대로 말하라’, ‘다크홀’ 등에 출연하며 쉼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배우다.

 
 

최근 진행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프레스콜에서 배정화는 “제 발로 찾아가 오디션을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연극부터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십수 년 연기 경력의 배정화가 콜오디션(추천된 이들의 오디션)도 아닌 일반 공고를 통해 오디션에 참여하자 제작사 측에서 오히려 놀랐다는 반응이더라고. 결과적으로 배정화는 스텔라 역할의 오디션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하고 5~6년 먼저 연극을 했어요. ‘넌센스’라는 뮤지컬도 했는데, 그때 ‘아, 나는 돈 받고 노래를 하면 안 되겠구나(웃음)’ 연기만 해야겠다 생각하고 쭉 연극을 했었고, 영화 쪽에서 제의가 오면서 또 한 10년은 영화와 드라마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영화가 1년에 한 편씩은 계속 있다 보니까 좀처럼 연극을 잡기 어렵더라고요. 연극은 연습 기간이 필요한데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봐. 해서 마음만 갖고 있던 게 10년이 지나고, 이제 무대 쪽에는 제가 활동하던 때에 계시던 분들이 아무도 안 계시고, 무엇보다 제가 연극을 하고 싶다는 걸 아무도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제의를) 기다리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하고 싶다, 해야겠다’ 싶으면 내가 가자 생각했죠. 사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많이 놓쳤거든요.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다가는 앞으로 더 못하겠다 싶어서 ‘일단 오디션부터 해야겠다’. 공고에 스텔라의 연기를 영상으로 보내라고 돼 있더라고요. 해서 보냈죠. 작품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였기 때문에 꼭 하고 싶었거든요. 붙었다고 연락이 온 후에 회사에 얘기했어요(웃음). 먼저 말해놓고 안 되면 창피하잖아요.”

소속사가 있는 배우가 ‘선(先)오디션 후(後)통보’가 가능할까 싶지만, 다행히(?) 배정화가 소속된 빅보스엔터테인먼트는 황영희, 백현주, 이종혁, 임혜영, 전동석, 정욱진, 이봄소리, 김주연 등 공연계 배우들이 대거 소속돼 있는 매니지먼트사다. 더욱이 소속사가 ‘돈 안 되는 공연’을 기피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태우던 시절 이야기다. 각종 영화, 드라마 등에서 공연계 출신 배우들이 맹활약하고, 덩달아 그들의 주가가 치솟으면서 이제는 오히려 가수, 배우, 신인, 중견을 불문하고 소속사가 무대를 지향하는 추세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오징어게임’ 속 오영수, 김주령 등이 단적인 예다. 조연이든 특별출연이든 작은 역할에도 주목하는 대중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공연 무대를 통해 연기력이 입증된 배우라는 인식은 배우의 이미지나 행보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계에 뿌리를 둔 배우들은 역시나 ‘실시간 살아 있는 예술’ 공연을 선호한다. ‘동백꽃 필 무렵’으로 대세가 된 강하늘이 종영 직후 연극 ‘환상동화’에 출연하거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99즈’ 히로인 전미도 역시 시즌1 종영 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돌아온 바 있는데, 고전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외에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불리는 ‘리어왕’, ‘햄릿’, ‘오셀로’, ‘맥베스’ 등을 비롯한 고전 작품은 인간의 심리, 신념, 인간군상 등을 다채롭게 조명하고 있어 이름만으로도 배우들을 설레게 하지만, 워낙 서사가 방대하고 등장인물이 많아 원작 그대로의 상업극이 제작되기는 쉽지 않다.

필수 도서로 꼽히면서도 ‘고전 작품=지루하다’는 인식도 큰 장애물이어서 애초 BEP(수익분기점)가 맞지 않으니 주로 국공립, 시립 단체들이나 국가 지원사업에 의해 간간이 제작되며 명맥을 이어가는 실정인데, 이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박해미, 김예령, 고세원, 임주환, 임강성, 태항호 등 출연진부터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이라는 무대까지 어엿한 상업극의 모양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로 객석 가용률이 100%가 되지 않아 최근 공연계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출연료 및 임금이 삭감된 상태인데, 이들은 고전 명작을 원작 그대로 연기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이유로 이번 작품에 함께하고 있다.

“(출연진 개런티는) 당연히 제대로는 아닐 거예요. 저는 사실 10년 만에 와서 요즘 공연 개런티가 어떤지도 모르겠는데(웃음), 작품이 워낙 명작이니까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들로 오신 것 같더라고요. 배우들한테는 분명 욕심 나는 작품이고, 이런 작품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다시 하게 될지를 모르니까 이번에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관객분들 중에 이 작품을 아예 모르고 오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공연을 보고 원작을 검색하고 알아보는 분들도 많다고 들어서, 저희 작품뿐만 아니라 명작을 소개하는 이런 공연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특히 이번에 블랑쉬 두 분이 분위기가 정말 다르시거든요. 박해미 선배님은 워낙 에너지가 넘치시고 김예령 선배님은 아주 여리고 가녀린 분이라 정말 다른 두 블랑쉬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공연만의 매력이거든요. 스탠리도 마찬가지로, 임강성 배우는 아직 무대에서 만난 적은 없는데, 임주환 배우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혈기 왕성한, 에너지 넘치는 스탠리고, 고세원 배우님의 스탠리는 약간 노련해요. 가장 클래식한 스탠리에 가깝죠. 같은 작품, 같은 캐릭터지만, 정말 다른 느낌으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사진제공=컴퍼니다
▲ 사진제공=컴퍼니다

극 중 스텔라는 ‘안주를 위한 욕망’으로 설명된다. 동물적이고도 폭력적인 남편 스탠리와의 삶은 평안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떠나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좁고 허름한 아파트 신세여도 나름 안정적인 생활과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스텔라의 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한 마디로 ‘가스라이팅’의 사례인데, 1940년대 미국 남부 사회가 배경인 만큼 이는 당시만 해도 그저 좀 별난 옆집 풍경이다. 극 중에서도 스탠리의 폭력에 윗집 이웃은 또 그러려니 재빨리 스텔라를 떼어놓고 스탠리를 나무라면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 불과 수십 년 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XX 떨어진다’던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것처럼, 스탠리와 스텔라의 설정은 당시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한데, 다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스텔라로 지금의 관객을 설득하려니 시급하게 본인부터 설득해야 했다.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는 블랑쉬는 그냥 단지 사랑받고 안정된 삶을 꿈꾸는 상처받은 한 여자고, 그런 블랑쉬를 대하는 주변 인물들이 오히려 비정상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스텔라 역시도 그런 마지막 선택이, 정말 언니를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너무 비겁하게 느껴져서 제 역할이면서도 스텔라를 사랑하기가 되게 힘들었고,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그 첫인상이 너무 강했거든요. 그래서 학교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교수님은 오히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감내하고 인내하고, 어쩌면 가장 강인한 여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서 저도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죠. 생각해 보면 모두가 내 가족을 위해, 지금의 삶과 생활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그 기저에는 ‘지금 이 현실을 열심히 살고 잘 유지하면 앞으로 나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라는 기대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텔라를 말할 때 ‘안주’, ‘타협’이라는 말을 주로 하는데,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쩌면 스텔라야말로 겉으로 눈에 띄게 뭔가를 하진 않지만,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어떻게든 이겨내 보자는 이 안에서의 에너지가 정말 강하고 센 여성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됐죠. 그런 스텔라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지금도 많이 고민하면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돌아온 연극 무대, 역시 연극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맛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배우 태항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연극을 10년 만에 하게 되니까 많이 걱정했죠. 처음에 극장에 들어와서 텅 빈 객석을 보는데 내가 여기서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무섭고 긴장되더라고요. 저는 연기적인 고민을 누구와 나누기보다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인데, 태항호 배우가 먼저 와서 ‘누나 이렇게 해 봐’, ‘누나 오늘 되게 좋아졌던데’, ‘누나 그런 거 좋아’, ‘누나 에너지 좋잖아’ 그런 얘기를 잘 해줘요. 너무 TV 연기처럼 하면 안 된다고, 소리를 좀 밀어주고, 이렇게 저렇게 해라. 그동안 생각 못 하고 있던 건데, 그렇게 하니까 또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칭찬해주면 또 좋아요(웃음). 옆에서 그런 격려나 조언도 해주고 힘을 많이 주니까, 그럼 진짜 그런 것 같은 거예요(웃음). 같이하는 선생님들이나 더블 임예나 배우도 그렇고, 정말 이번에 다시 느낀 게 ‘진짜 연극은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사실 카메라 앞에서는 저 혼자 감당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연극은 거의 2시간 동안 다 같이 움직이다 보니까 그런 호흡이 진짜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고, 같이 호흡이 잘 맞고 팀워크가 너무 좋아서 10년 만에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금방 편해지더라고요.”

사실 태항호와 배정화는 같은 83년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배정화가 빠른 생일이어서 태항호가 누나라 부르고 있다고(그러지 말라는 데도). 그런데 82년생 임주환에게 형, 83년생 배정화에게 누나라 부르다 보니 정작 배정화와 임주환의 족보(?)가 꼬여버리고 말았단다. 임주환과 배정화는 학번이 같다. 이들의 호칭 정리는 아직도 오리무중. 배정화는 임주환을 부르는 호칭이 지금까지도 ‘임탠리님’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배정화와 같은 역할의 임예나 역시 공교롭게도 빠른 83이라, 연습실에서 둘은 서로 “오늘은 임탠리 호칭 정리했어?”가 화두였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공연 끝나기 전까지 이들은 “어려운 숙제”를 풀 수 있을지.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재차 연극 무대에 서며 배우라는 직업과 매력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매체를 가리지 않는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 원로배우이자 최고의 현역 배우 이순재의 연극 ‘리어왕’은 직접 예매도 했다.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배우의 멋’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은 소망이다.

“다시 연극 하면서 관객과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게 너무 새롭고 너무 좋더라고요. 분명 예전에도 느꼈을 텐데,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너무 감격스러운 거예요. 이게 영화든 뭐든 계속 연기하고 작품 하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진짜 봐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너무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가뜩이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극장에 오시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인데, 정말 한 분 한 분 너무 감사하고, ‘보답은 잘하는 연기’라고 늘 생각하고 있고요,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도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기할 때 진심으로 열심을 다 하고, 다양하게 많은 작품으로 꾸준하게 연기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연기 오래 하신 분들이 새삼 정말 대단하고 멋있어 보여요. 이순재 선생님 ‘리어왕’은 저 공연 없는 날 맞춰서 예매했는데 그것도 너무 기대되고, 원작 그대로 러닝타임이 3시간 20분이라는데 심지어 원캐스트시고, ‘와, 어떨까? 그 작품’ 그런 얘기들 하면서, ‘무대에서 숨만 쉬셔도 감동적일걸?’ 그러는 거죠. 진짜 거기까지 가시는 동안 세월이 그냥 흐른 게 아니라 한 작품, 한 작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정말 애써서 연기하시고, 그런 작품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신구 선생님, 박정자 선생님, 윤여정 선생님도 그렇고, 그렇게 꾸준하게 오래 연기하신 분들은 특유의 여유와 멋이 있다고 할까. 그런 분들을 보면 저도 빨리 나이 먹고 싶고, 실제 그분들 나이가 됐을 때 저도 그런 좋은 배우가 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 죽을 때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웃음).”

한편,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오는 11월 21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편집자주=배우 배정화의 인터뷰는 사진 촬영 외에 유선 인터뷰로 진행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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