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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뜻하고 먹먹하게, 우리 연애했었어요

드라마 리뷰: 보통의 연애 종영

  • 입력 2012.03.12 12:02
  • 기자명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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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한재광(연우진)은 형을 잃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재광의 형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주에 내려갔다가 죽었다. 아니, 살해당했다. 형이 그렇게 되었던 날, 울면서 뛰쳐나가는 한 소녀를 만났다. 형을 죽인 범인의 딸이었다. 죽을 작정이었는지 그 소녀는 결국 그 차갑고 깜깜한 물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재광은 그 소녀를 붙잡지도, 신고하지도 않았다. 그냥 뒤돌아서 그 자리를 피했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비겁한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다들 “형 몫까지 잘 살아라”라고 하지만 정작 재광은 형의 몫까지 잘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답답하다.

똑같이 7년 전, 김윤혜(유다인)는 아버지를 잃었다. 윤혜의 아버지는 평생 하지 말았어야 할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음주 운전 중에 길 가던 재광의 형을 차로 받았고, 병원이 아닌 으슥한 산 속으로 데려가서 잔인하게 유기했다. 그렇게 윤혜의 아버지는 살인자가 되었고 도주했다. 그 이후로 길거리에는 아버지의 공개 수배 포스터가 붙어 있고, 윤혜와 할머니는 아버지와 자신들을 비난하는 세상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를 하면서 눈치를 보며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윤혜는 아버지를 믿으며 지냈다. 그렇게라도 버텨야만 했으니까. 다들, 아니 몇몇이 “꿋꿋하게 잘 살아라”하고 하지만 정작 윤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자신이 그래도 되는 건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7년 동안 재광은 너무 잘난 아들이었던 형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못 놓고 있는 어머니를 피해 다녔다. 어머니의 시간은 형이 죽은 그 시점에서 딱 멈춰버렸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본인 탓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못 이겨냈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꼭 죽어야 할 사람이 형이 아니라 재광이어야만 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편, 윤혜는 안쓰럽지만 기특할 정도로 나름 잘 버티고 있었다. 세상의 시선은 싸늘했지만 그래도 윤혜는 길가의 강아지들을 종종 집에 데려와 핀잔을 듣고는 했었던 아버지의 결백을 믿었다.

그리고 7년 후, 재광은 무당이 하는 말을 듣고 또 한번 난리를 칠 것 같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전주에 간다. -재광의 어머니는 사건 이후 꼬박꼬박 심부름 센터를 동원해서 윤혜의 집을 뒤집어 놓았더랬다(..)- 그리고 7년 전 자신이 그냥 붙잡지 않고 지나쳤던 윤혜를 다시 만난다. 전주에 내려온 공식적인 이유는 용의자인 윤혜의 아버지였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비공식적이지만 따로 있다. 본인 만큼이나 하루 아침에 세상에 내팽개친 그런 기분을 너무 잘 알 것 같은, 7년 동안이나 못 잊고 계속 생각했던 윤혜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윤혜는 참 예쁘다.

그저 안내해야 할 서울 손님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재광은 생각보다 꽤 빠르게 윤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더 마음이 갔었다. 어차피 떠나버릴 사람이니 아버지의 일이나 자신의 처지 따위 끝까지 비밀로 해 두고 싶었지만 좁은 동네라 좀처럼 그게 되질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재광이 죽은 그 사람의 동생, 즉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배신감 내지는 충격을 둘째 치고, 자신을 살인자의 딸이 아닌 그냥 ‘김윤혜’로 봐 주는 재광에게 자꾸만 마음이 더 간다. 따라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보통의, 평범한, 지극히 일상적인 연애가 이 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범인이 윤혜의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지고, 만약 진범이 따로 있다면 꼭 둘이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잔인한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윤혜는 살인자의 딸이고, 재광의 형은 윤혜의 아버지한테 살해당했다. 재광과 윤혜는 결코 7년 전 그 사건과 각자의 가족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래서 이루어질 수 없던 사랑이었다.

그렇다고 새드 엔딩은 아니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해피 VS 새드 엔딩을 구분 짓기도 좀 모호하다. 윤혜와 재광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뿐. 앞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둘이 다시 재회하는 건 확실하지 않을까. 재광이 윤혜가 사는 곳으로 다시 찾아왔으니 말이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믿고 싶다. 마지막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예쁜데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려와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연애>에 웰 메이드, 명품이라는 말을 꼭 붙여주고 싶은 이유는 이 드라마가 단 4회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윤혜와 재광의 연애 이야기를 포함한, 그들 각자의 개인사와 가족사까지 놀라울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연애>에는 참 뻔하지 않게 연애에 대해 생각하게 하면서도, 평생을 살인자의 딸로서 살아가야 하는 한 여자의 무게와 죽은 형을 그리워하고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한 남자의 무게, 살인자 아들과 아들의 그늘에서 힘들어할 손녀를 생각하는 할머니와 죽은 아들을 가슴에 품은 채 등 돌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어머니의 미안함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 묵직한 이야기를 아주 덤덤하고 따뜻하게, 그래서 너무나 슬프게 잘 그려냈다. 진심으로 연출, 연기, 음악 등 뭐 하나 흠 잡을 게 없었던,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만난 ‘완벽한’ 드라마였다. <보통의 연애>는 정말 어떠한 자극적인 양념 없이 그저 순수하게 스토리의 진정성으로 진검승부를 했으니까. 그래서 여운이 더 짙다. 당분간 시름시름 앓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윤혜와 재광이 서로 가해자의 딸이고 피해자의 동생이라서 헤어진 게 아니라, 그냥 보통의 연인들이 그러하듯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고집 센 여자는 별로여서/ 직업이 불안정해서/ 여자 관계가 복잡해 보여서’ 등등의 이유로 헤어져서 좋았다. 그 장면 하나로 4회 내내 그들을 보면서 했던 느낀 설렘과 안타까움을 다 달래준 것만 같은 느낌. 그렇게 진짜 연애를 했었던 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가슴 먹먹한데도 처량하지 않고, 콧잔등이 찡하면서도 예쁘다며 웃음도 짓게 되어서 좋았다.

연애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사람을 ‘성장’시켜준다는 데 있다고 했던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면 부쩍 크게 된다. 그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싶고, 그 사람의 아픈 곳을 보듬어주고 싶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도록 보다 나은 자신이 되고 싶으니까. 참 힘들어 보였는데 재광과 윤혜도 보통이지만 각별한 연애를 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줬다. 윤혜는 웃으며 햄버거를 먹을 수 있고, 재광은 앞 모습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윤혜와 재광이 꼭 연인이나 친구, 혹은 지인 등의 관계로 함께 하지 않더라도 둘은 다시 만나면 -그 골목길 어드메라던가- 분명히 웃으면서 인사할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 살아갈 테지. 그거면 됐다. 김윤혜, 한재광, 두 사람 모두 잘 가요. 그리고 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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