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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최초 오스카' 윤여정, 수상 소감부터 인터뷰까지(종합)

  • 입력 2021.04.26 16:47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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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한국영화 역사 102년, 배우 윤여정이 한국배우 최초로 배우 부문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시상식에서의 수상 소감부터 이후 현지에서 열린 간담회까지 윤여정 특유의 솔직한 입담이 빛을 발했다.

오늘(25일)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각본상, 음악상까지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중 윤여정이 마침내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앞서 강수연, 전도연, 김민희가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에서 각각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바 있고,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아시아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부문을 휩쓸며 4관왕에 올랐으나 배우 부문에서는 고배를 마셨는데 이번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한국영화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영화 ‘미나리’의 제작자이기도 한 배우 브래드 피트의 시상으로 여우조연상을 받게 된 윤여정은 소감에 앞서 “드디어 만났다. 반갑다.”며 “우리 영화 촬영할 때 어디 있었냐”고 묻는 등 특유의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주목을 모았고, 이어 “항상 일하러 나가라는 두 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또,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을 비롯해 배우 스티븐 연, 한예리, 노엘 등 모두가 영화를 통해 가족이 됐다며 “정이삭 감독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 감독님은 우리의 선장이자 저의 감독님이었다”고 감사를 전했고, 특히 영화 데뷔작 ‘화녀’를 함께한 故김기영 감독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며, “그는 천재 감독이었다. 살아계셨다면 기뻐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시상식 이후 현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윤여정은 영화와 시상식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전했다.

▲ 사진=MBC 방송 캡처, MBC 유튜브 채널 현지 인터뷰 생중계 캡처

▶ 여우조연상, 영화 ‘힐빌리의 노래’ 글렌 클로즈가 받길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상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글렌 클로즈가 받길 진심으로 받았다. 이번에 와서 그녀와 같이 얘기하고 했던 게 좋았다. 2001년인가 영국에 갔을 때 그녀가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슈를 하는 걸 보고, 아 정말 대단하다. 정말 열심히 한다. 그녀가 저랑 동갑이더라. 그 나이에 할 수 없는 역할인데 그녀가 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 싶었고, 이번에 진심으로 그녀가 받기를 받았다. 동양 변방에서 온 사람들인데, 상 받는다는 소리에 믿지도 않았고 인생을 오래 살아서 배반을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바라지도 않았는데, 진짜로 제 이름이 불리는데 영어도 못 하지만 그거보다는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그게 좀 창피하다.”

▶ 브래드 피트 만난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 미국도 한국도 똑같더라.

“미국 사람도 우리랑 똑같더라. 계속 브래드 피드를 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더라. 그 사람은 영화에서는 자주 봤으니까. 그런데 사실 브래드 피드가 우리 영화 제작자다. 다음에 영화 만들 때 돈을 조금 더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잘 빠져나가더라. 크게 쓴다는 소린 아니고 조금 더 하겠다고 하더라. 이건 독립영화였다. 한국에 정말 팬이 많다고 한번 오라고 했더니 꼭 오겠다고 하더라.”

▶ 50년을 훌쩍 넘긴 연기 인생, 세월이 변하면서 연기 철학도 변한 게 있을까.

“제 연기 철학은 아마 제 열등의식에서 시작됐을 거다. 나는 연극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다가 했기 때문에 제가 제 약점을 아니까 열심히 대사를 외우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게 처음의 제 시작이었고, 이후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냥 편하게 내가 연기를 좋아해서 하는 게, 물론 좋아도 해야겠지만 저는 절실해서 했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저에게 대본은 성경과 같았다. 그냥 많이 노력했다. 브로드웨이 명언도 있지 않나. 누가 브로드웨이에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길을 물었는데 ‘연습’이라고 했다는 것처럼, 연습밖에 없는 것 같다. 연습이라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다.”

▶ 솔직하고 재치 있는 입담의 바탕?

“입담은 그냥 제가 오래 살았지 않나. 수다를 많이 떤다. 수다에서 입담이 나왔나 보다.”

▶ 배우 윤여정에게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고는 없을 것이다. 나는 ‘최고(最高)’ 그런 말이 싫다. 너무 ‘1등’, ‘최고’ 그러는데, 저는 그런 거 하지 말고 우리 다 ‘최중(最中)’ 돼서 다 같이 살면 안 되냐고 한다. 아카데미가 동양인들에게 너무 높은 벽이 되지 않았나. 그냥 ‘최중’하면서 다들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 싶다. 이렇게 말하면 사회주의자가 되나(웃음).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다.”

▶ 작품 선택의 기준, 60 전후로 바뀌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60 넘어서 바뀌었다. 60전에는 이걸 하면 좋겠구나, 나름 계산을 했는데 60 넘으면서부터는 그냥 사람이 좋으면, 내가 믿는 사람이면 하리라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 대본을 읽은 세월이 오래됐으니까 이게 진짜 얘긴가 아닌가 딱 보면 아는데 너무 순수하고 진지하고, 진짜 얘기였다. 대단한 기교가 있어서 쓴 작품이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정말로 얘기를 썼더라. 그게 읽은 나를 건드렸다. 그래도 또 제가 잘 안 넘어가는데 감독을 만났더니, 요새 감독들 다 잘난 척하는데, (정이삭 감독은) 진짜 순수하고 진실하더라. 요새 이런 친구가 있나, 그래서 한 거다. 그리고 그냥 대본을 전해주는 친구를 믿었다. 그 친구의 안목을 믿는 게 아니라 그 친구를 믿었다.”

▶ 영화 ‘미니라’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대본을 잘 쓴 거다. 부모가 희생한다는 것, 할머니의 사랑은 세계 보편적인 이야기 아닌가. 그걸 진심으로 썼다는 것. 그리고 배우는 자기 파트를 받으면 그걸 내가 어떻게 할지를 열심히 연구하는 거지 그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는 모른다. 그걸 알면 사업을 했을 것이다.”

▶ 향후 계획?

“앞으로의 계획은 없다. 오스카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거 아니지 않나. 이제 늙어서 대사를 외우기가 힘들어서, 남에게 민폐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 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수상소감에서 언급한 두 감독.

“영화는 감독이다. 영화는 감독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걸 60 넘어서 알았다. 감독이 하는 일이 정말로 많다. 영화는 종합예술이고, 머리가 좋은 사람부터 아닌 사람까지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60이 돼서야, 김기영 감독님이 돌아가시고서야 감사한 걸 알았다. 그전에는 너무 이상한 사람이라고, 다들 천재 감독이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싫었다. 그게 너무 죄송하고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일이다. 그리고 김기영 감독님은 어려서 만났고 아이작 감독은 늙어서 만났는데, 아이작 감독은 우리 아들보다 어린데, 현장에서 수십 명을 컨트롤하려면 감독이 미치는데, 어떻게 이렇게 차분하게, 아무도 모욕주지 않고 다 존중하면서 한다. 그를 보면서 희망을 봤다. 그는 코리안 아메리칸이지 않나. 한국 사람의 종자로 미국 교육을 받아서 굉장히 세련된 한국인이 나온 거구나, 너무 희망적인 걸 봤다. 그 사람이라고 화 안 나겠나, 그런데 그걸 다 콘트롤 하는 걸 보고 43살인 친구한테 내가 존경한다고 했다. 내가 아이작을 만난 것도 배우 생활을 오래 해서, 김기영 감독님에게 못 한 감사를 정이삭 감독이 다 받는 것 같다. 그만큼 지금 제 나이가 일흔다섯인데 그래도 아직 철이 안 든다.”

▶ 영화 ‘미나리’의 엔딩,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봐.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전엔 모르다가 ‘선댄스’에서 영화를 처음 보고 굉장히 놀랐다. 원래 스트립트(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한국 정서에 맞게 할머니가 한참 후에 돌아가신다. 화투도 못 쳤고, 엔딩에서 미나리에 대한 내레이션이 나온다. 우리가 그 엔딩을 좋아했는데 그걸 바꿔야 한다더라. 저는 그거 아니라고 주장했었고, 보통 한국 감독은 누가 이기나 싸우고 하는데, 예산도 없고 갑자기 아역 배우 오디션도 그렇고 그냥 바꾸기로 했다고, 그만큼 굉장히 현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바꾼 대본은 나는 안 보여주더라. 나는 ‘선댄스’에서 처음 보고 그 엔딩이 너무 좋았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사람이 완전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그 엔딩이 너무 좋았다. 지인들이나 내 동생도 끝이 그게 뭐냐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다. ‘영화 좀 세련되게 봐라’”

▶ 이번 계기로 해외에서 러브콜 많이 들어오는지, 계획은 어떤지?

“영어를 못해서 해외에서 들어올 일은 없다.”

▶ ‘K 할머니’를 사랑해준 한국 국민에게 한 말씀.

“제가 상을 타서 보답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내가 축구선수들의 심정을 알겠더라. 정말 계획이 아무것도 없었고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데 정말 너무 많이 응원해주셔서, 그분들은 성원을 열심히 해주시는데 이거 못 받으면 어떡하나, 그렇게 돼 버렸지 않나. 정말 노미네이트된 것만도 난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할 때 그 사람들 발 하나에 온 국민이 난리 날 때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너무 안 됐더라. 그리고 김연아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정말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고 처음 받는 스트레스였다. 그건 별로 즐겁진 않았다. 그냥 즐겁자고 했던 거고, 오늘도 우리 (아카데미)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했던 거다.”

▶ 영화 ‘미나리’ 캠페인 탓에 해외 활동 주력, 한국에 살어리랏다.

“왜 해외에서만 인터뷰하느냐고 할까 봐 말씀드리는데, 내가 영어로 인터뷰하는 게 좋았겠나, 근데 그게 캠페인이더라. 이들의 표를 사기 위해서 정치인들처럼 그렇게 하는 거더라. 외국 언론이 좋아서가 아니고 캠페인이라고,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해서 한 거지, 한국 언론을 멀리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이 나이에 한국에서 살아야지 어디 가서 살겠나.”

한편,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1971년 故 김기영 감독과 스크린 데뷔작 '화녀'를 통해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며 단숨에 은막의 스타로 떠올랐다. 또한, 같은 해 출연한 MBC 일일 사극 '장희빈'을 통해서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장희빈으로 꼽히는데, 드라마 '장희빈' 1세대가 바로 윤여정이다. 극 중 장희빈이 처절하게 사약을 마시는 장면을 최초로 연기한 배우도 윤여정이다. 이후 이 장면은 '장희빈'의 시그니처가 됐을 정도다. 

결혼과 이혼 사이 잠시 은막을 떠났던 윤여정은 영화 '바람난 가족', '하녀(원작 '화녀')' 등으로 완벽한 복귀를 알렸고, 각종 드라마는 물론 '윤식당', '윤스테이'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던 차다. 특히 이번 '미나리' 캠페인과 각종 해외 시상식에서 재치 있는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의 세련된 할머니 배우', 'K 할머니'라는 애칭을 추가했고, 드디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획득하면서 윤여정은 데뷔 55년 만에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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