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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조선구마사'로 타오른 세종 후대의 문화 횃불

  • 입력 2021.03.24 15:17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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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우리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는 민심의 횃불이 결국 자본의 위세를 꺾었다. 

한국판 엑소시즘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SBS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았던 '조선구마사'가 첫 방송 직후 심각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사면초가에 놓인 SBS와 제작사는 다음 주 결방을 결정하고 재정비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방송가 초유의 사태다.

'조선구마사'는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을 연출한 신경수 연출과 tvN '철인왕후'를 집필한 박계옥 작가가 제작에 참여했고, 스튜디오플렉스,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가 제작을 맡았다. 특히 전작 tvN '철인왕후'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한낱 지라시'라고 표현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문화유산을 깎아내렸는 지적을 받은 박계옥 작가가 최근 중국 대형 콘텐츠 제작사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와 집필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선구마사'에 전보다 짙은 친중(親中) 의도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으로 꼬집은 부분은 소품, 인테리어, 의상,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그 중 가장 큰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 인물 왜곡이다. 태종(이방원/감우성 분)은 환영에 시달린다는 설정으로 죄없는 백성을 연달아 무참히 살해해 폭군으로 묘사됐고 바티칸에서 왔다는 일개 신부 일행은 일국의 왕자인 충녕대군(세종/장동윤 분)에게 예의라고는 1도 없이 반말에 시중드는 사람 쯤으로나 취급하는데, 충녕대군은 그 자리에서 겸상도 하지 못 한 채 병풍마냥 서있다. 더 나아가 충녕대군은 자신의 선대조를 '셀프 디스'하는가 하면 급기야 사당패 무리는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을 두고 충신 다 얼어죽었으냐며 비아냥댄다. 그야 말로 한국사의 중요 인물들을 '모두까기'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우리 국민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거나 드라마를 위한 상상 따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이 상태로 '조선구마사'가 해외에 방영된다면 세계 많은 시청자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조선구마사' 1~2회를 확인한 시청자들이 역사왜곡 우려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동북공정(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중국의 국가적 연구 사업) 공세가 한복, 김치 등을 넘어 세종대왕, 윤동주 시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위인들까지 조선족으로 편입하여 주장하는 때에 '조선구마사'가 조선 초기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면서 화면 곳곳에 중국색을 대거 입혔다는 점은 자칫 조선 시대에 이미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노라고 한국이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또한, 중국의 한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조선구마사'를 소개하면서 국내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설명과 달리 '북한이 건국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드라마'고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을 키웠다. 심지어 배경 음악에까지 우리 전통악기가 아닌 중국 악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음악도 상상력의 범주냐', '알차게도 써먹었다'는 등의 분노를 쏟아내며 고의성을 더욱 강하게 의심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대중은 '상상력을 가미한 허구'라는 핑계로 이 드라마를 그냥 두어선 안 된다며 드라마 방영 중단,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은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드라마 홈페이지, 각종 온라인 사이트 및 SNS 등을 가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전주 이 씨 종친회 역시 강력한 항의와 함께 방송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분노한 대중의 불매운동 기류가 일파만파 확산되자 광고사들은 3일 만에 '조선구마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장소 및 제작비를 지원했던 나주시, 문경시도 돌아섰다. 국고가 지원됐다고 알려진 문경시 홈페이지에는 국민 세금을 회수하라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결국 지난 24일, SBS와 '조선구마사' 제작사 측은 최근 불거진 드라마 관련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나란히 입장을 밝혔다. 제작사는 "죽국풍 미술과 소품(음식 등)과 관련하여 예민한 시기에 큰 혼란을 드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고 사과하고 "구마 사제 일행을 맞이하는 장면 중 문제가 되는 씬은 모두 삭제하여 VOD 및 재방송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부 의복 및 소품이 중국식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라고 인정하면서 "앞으로 보다 더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드라마 제작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알렸다. 다만, '조선구마사'는 순수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애초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제작된 드라마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한 해명이다. 

이어 SBS 역시 "실존 인물과 역사를 다루는 만큼 더욱 세세하게 챙기고 검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시청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방송된 1, 2회차 VOD 및 재방송은 수정될 때까지 중단하겠다. 또한, 다음주 한 주간 결방을 통해 전체적인 내용을 재정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나란히 공식 사과와 후속 조치를 내놓으며 재발 방지를 다짐했으나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앞서 노골적인 중국 PPL로 지적을 받았던 tvN '여신강림'과 비슷한 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온 '철인왕후' 등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을 챙긴 탓인지 현재 방영 중인 tvN '빈센조'도 중국 PPL을 그대로 노출했다가 역풍을 맞고 PPL 철회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선구마사' 사태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민심이 '그냥 두어선 안 된다'는 문화 횃불로 집결한 모양새다.

세종대왕은 나라의 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이유를 이름에 명시했는데,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중국과 나라의 글이 달라 백성이 글을 모르니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하니 잘못(범죄)을 저지르게 된다. 또,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니 이를 가엽게 여겨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었으니 매일 익혀 편하게 사용하게 하고자 한다.' 그것이 우리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알고 있는 훈민정음 언해본 기록의 풀이다.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은 지난 EBS '역사채널'의 인터뷰에서 훈민정음과 관련해 "바른 말을 해야 바른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래서 국격이 높아지고 백성의 수준이 높아지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뜻이 훈민정음(訓民正音) 네 글자에 담겨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농담 반 진담 백'으로 한국에서는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이 둘이 있다는 말이 있다. 바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한 일화로 세종 14년, 한 신하가 지금의 많은 업적을 노래로 만들자 청했는데 세종은 당대의 일을 찬양하게 할 수는 없다, 후대가 평가하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후대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중에도 세종의 '바른 소리(한글)'를 끝까지 지켰고 지금의 후대는 그것을 무기로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한 문화 횃불을 들었다. 지금의 이 횃불은 향후 문화, 연예계 전반의 콘텐츠 제작 직간접 관련자 모두에게 뜨겁게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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