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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현장] 박정자의 마지막 '해롤드와 모드'..아름다운 여정에 마침표

  • 입력 2021.03.23 04:47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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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임준혁, 박명성 프로듀서, 박정자, 윤석화, 오승훈

[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연극계 대모 박정자(79)가 스스로 다짐한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 19 그리고 80’이 올해 마침내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는다.

배우 박정자의 마지막 ‘모드’로 예고된 연극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가 오는 5월 관객들과 만난다. ‘해롤드와 모드’는 콜린 히긴스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1971년 동명 영화로 제작된 뒤 다시 히긴스에 의해 1973년 연극 무대에 올랐다. 자살을 꿈꾸는 19세의 소년 해롤드가 80세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모드를 만나면서 사랑을 느끼는 파격적인 소재의 이 작품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돼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현재까지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7년 김혜자, 김주승 주연으로 초연되어 현재까지 총 일곱 차례 공연되었다. 그중 초연을 제외한 여섯 번의 공연 모두 박정자가 모드 역으로 출연하면서 ‘해롤드와 모드’는 박정자의 시그니처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박정자는 2003년 첫 출연 당시 “여든 살까지 이 작품을 하고 싶다. 그리고 80이 되는 날 나 역시 모드를 끝낼 수 있으면 아름다울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올해, 박정자의 일곱 번째 ‘해롤드와 모드’다. 2008년 '19 그리고 80'으로 박정자의 '해롤드와 모드'와 첫 인연이 된 신시컴퍼니가 제작을 맡았다.

22일 오후, 서울 명동 소재의 페이지 명동에서 연극 ‘해롤드와 모드’의 제작사 신시컴퍼니 박명성 프로듀서, 배우 박정자, 연출자로 참여한 윤석화를 비롯해 해롤드 역의 오승훈, 임주혁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박정자는 자신의 공언을 현실로 이루게 된 소회로 “내가 말하기 쑥스럽지만, 말하자면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 ‘19 그리고 80’이었다.”며 “근 20년을 한 작품을 했는데 기네스북 같은 데 오를 수 없는 거냐 했더니 주변에서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 너스레를 보태는 등 어딘지 모드를 닮은 노장 배우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여든에도 빛을 발했다.

박정자는 지난해 자신의 무대 인생 60년을 소재로 한 음악극 ‘노래처럼 말해줘’를 통해 고령이 무색할 정도의 놀라운 순발력과 에너지로 무대를 홀로 채우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는데, 여전히 ‘현역’인 만큼 그녀의 ‘해롤드와 모드’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된다는 점은 실로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박정자는 가볍고 싶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90까지 하지’ 그러는데, 이제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뭐든 가벼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사뿐하게, 가뿐하게 ‘해롤드와 모드’는 이쯤에서 내려오는 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다음에는 윤석화 씨가 모드를 할지 모르고, 그러면 나는 객석에서 즐겁게 관람하고 싶다.”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작품의 마지막 시즌, 박정자는 다시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무대에 서겠다는 각오다.

“이 80을 기다렸는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이 장소로 오면서 참 감사하더라. 모든 시간에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나한테까지도 감사하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해롤드와 모드’를 일곱 번째 만나는데, 처음 할 때는 한 회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저보다 관객들이 더 좋아하시더라. 해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80까지 공연해야겠다’ 주변에 그렇게 일방적으로 얘기했다. 속으로는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 19 그리고 80’이라고 했다. 실제 이 나이까지 왔는데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이번에도 좋은 무대 만들어보려 한다. 정말 감사하다.”

▲ 샤진제공=신시컴퍼니

여든의 배우로서의 소회도 있었다. 특히 60년간 무대를 지킨 박정자는 최근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언택트 시대의 돌파구로 다수의 작품이 온라인 콘텐츠로 소비되는 상황에 대해 크게 아쉬워했다. 발레와 함께 공연예술의 클래식으로 통하는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이다. 그만큼 배우들은 관객의 반응, 호응 등을 통해 더욱 큰 시너지를 얻고 관객은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현장에서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러한 공연예술 특유의 현장성이 결여된 한계에 관한 안타까움이다.

“모드는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매 순간이 살아 있다. 해롤드에게 매일 새로운 걸 해보자고 하고 몸으로 언어로 해롤드에게 보여주는데 그를 통해 내가 배우고 있다. ‘모드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걸 해보자’. 해서 가끔 엉뚱하게 모험 아닌 모험을 할 때도 있는데, 그 엉뚱함이 때로는 에너지로 바뀌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고, 또 배우가 맨날 똑같은 역할만 하면 정말 재미없다. 배우가 머물러 있는 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말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했는데, 항상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나타났을 때 관객들 또한 기쁨이 있지 않겠나. 저의 연기 60년은 그렇게 정리하고 싶다.”

“80이라고 다를 것 같지만 다르지 않다. 원한다고 안 오고 안 원한다고 오지 않지 않는 것처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어느덧 내가 이 자리에 와있다. 사실 내가 굉장히 성숙할 줄 알았는데 미성숙한 채 나이를 먹었다. 사실 배우가 공자처럼 너무 지혜로워도 안 된다(웃음). 그동안 여섯 번 해온 무대보다 더 나으리라고 자신은 못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무엇보다 무대는 관객이 0순위다. 해서 관객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처럼 끔찍한 게 없는 것 같다. 연극은 디지털이 될 수 없다. 연극은 그냥 아날로그인 채로 있어야 한다. 제가 아직 미성숙한 것도 제가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닌가 싶다.”

▲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박정자의 마지막 ‘해롤드와 모드’는 든든한 동지 윤석화가 함께한다. 윤석화는 2003년 박정자의 초연을 함께했고, 그녀의 마지막을 또한 함께한다. 이는 두 배우의 약속이었다. 박정자는 윤석화와 너무 똑같은데 너무 다른 게 장점이라고 했다. 같기만 하면 발전이 없는데 너무 달라서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이가 매번 좋은 것도 아니어서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보태기도 했다.

“프로덕션에서 연출자로 저를 뽑은 게 아니라 그냥 박정자 선생님과 약속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프로젝트에 누가 되어선 안 되겠고, 아닌 게 아니라 선생님의 80세, 마지막, 이런 게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결국 이 작품을 같이하는 이유는 박정자, 윤석화라는 배우의 오로지 연극이라는 길 위에서의 동지애 때문이다. 연극 외에는 어떤 이물질이 없다. 모드의 대사에 ‘어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런데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연극을 통해 여기까지 온 박정자 선생님과 이 작품의 연출을 통해 가야 할 목표라 생각하고 있다.”

“박정자 선생님의 모드는 이번이 일곱 번째여서 연출로 기획 시안을 드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제가 연출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의 여섯 번 공연을 다 봤는데, 역시 첫사랑, 첫 느낌이 가장 사랑스럽고 맑고 비어있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이미 완벽한 작품이어서 행간에 시의 개념을 넣고 싶고, 배우들의 연기가 오롯이 시가 되길 바란다. 선생님의 깊이는 이미 따라갈 수 없을 것이고, 이미 2003년 모드로 많이 돌아가 계시더라. 19를 연기하는 두 배우도 이 대선배를 통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역대로 ‘19 그리고 80’은 19세 소년 해롤드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 박정자라는 대선배와 호흡을 통해 성장하면서 '별들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종혁, 윤태웅, 김영민, 강하늘 등이 현재까지도 다양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올해에는 연극계 기대주 임준혁, 오승훈이 더블 캐스팅됐다. 박정자는 “19는 더블 캐스팅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계 탄 것 같다.”며 “이번에 배로 더 사랑 보따리를 늘려야 할 것 같다. 기대가 크고, 앞으로 이 인연으로 해서 이들의 무대를 내가 지켜볼 것이고, 이번 공연에서는 역대 해롤드를 초청하려고 한다. 솔직히 강하늘보다 미남이지 않느나. 강하늘 들으면 큰일 나겠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오승훈과 임준혁은 박정자의 마지막 ‘해롤드와 모드’의 해롤드에 출연하게 돼 부담도 된다면서도 박정자의 마지막 공연이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이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우로서나 사람으로서 한층 성장할 계기가 될 것으로 입을 모았다.

여든의 나이가 되니 이제는 계단을 오를 때, 버스를 탈 때 등 평범한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는 박정자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100%, 200%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가 보여줄 마지막 모드가 누군가의 변화가 되어 주길 바랐다.

“모드는 정말 무공해고 소유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에는 80세 생일에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데 그 선택 또한 굉장한 도전이고 그 용기가 또 너무 부럽기도 하다. 제 인생의 롤모델이 바로 모드다. 모드 같은 사람만 있다면 욕심 부릴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나이 많은 배우가 롤모델로 모드를 꼽듯이 무대를 보시는 분들이 그것이 박정자든 모드든, 누군가가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람이다.”

한편, 박정자의 일곱 번째 모드이자 마지막 모드로 기록될 올 시즌 연극 ‘해롤드와 모드’는 오는 5월 1일부터 23일까지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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