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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인터뷰] 연극 '오월의 햇살', 5·18 광주와 고전이 만났을 때

  • 입력 2020.12.07 09:13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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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미지애시어터

[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5·18 민주화운동을 고전에 녹인 작품, 연극 ‘오월의 햇살’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이어서 주목이 쏠린다.

서울시와 한국연극협회의 공연업회생프로젝트 선정작이기도 한 미지愛시어터(이하 ‘미지애시어터’)의 연극 ‘오월의 햇살’은 포스터가 직관적으로 보여주듯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에 5·18 민주화운동을 투영한 작품이다. ‘정의의 사람들’은 1905년 모스크바에서 실제 발생한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향한 폭탄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다섯 혁명당원은 혁명의 정당성을 두고 각자의 정의와 신념으로 치열하게 부딪힌다. 주요 등장인물이 많고 그럼에도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만큼 대학가 연기 학도들에게 한 번은 거쳐야 할 필수 작품으로 통하는 고전이다. 

그를 각색한 ‘오월의 햇살’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 민주 항쟁의 대표적 역사 광주의 5월을 배경으로 각색됐다. 제목은 1980년대 후반에 발표된 가수 이선희의 동명의 노래 '오월의 햇살'을 그대로 옮겨 의미를 더했다. 이 곡은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을 그린 곡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6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서완소극장에서 ‘오월의 햇살’ 첫 런쓰루를 마친 연출 정상훈과 ‘박영호’ 역의 최영준이 연예투데이뉴스와 인터뷰로 만났다.

올해 일곱 번째 작품으로 연극 ‘오월의 햇살’을 선보일 미지애시어터는 2016년 ‘괜찮냐’를 시작으로 ‘귀향’, ‘꽃은 사절합니다’, ‘황야의 물고기’, ‘만선’ 등을 공연했다. 주로 ‘사람’을 다룬 작품들이다. ‘미지愛시어터’라는 이름에 극단의 방향성을 숨겨놓았다.

▲ 사진=(상좌부터 시계방향) 최영준, 오세철, 김정환, 김준호, 손인찬, 이진주, 강별, 정상훈

정상훈 : 미지애시어터는 ‘미지(味知)’ 알지 못하는 것, 또 ‘사랑 애(愛)’인데, 어쨌든 인간을 향하고 있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도 앞날을 알지 못하고 무엇을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미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인간은 과연 어떤 것에 희망을 두어야 하는가, 무엇에 기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때 아마도 ‘사랑’이지 않을까. 해서 ‘미지愛시어터’를 만들었고, 저희가 만드는 작품들은 대부분 휴머니즘이 조금 더 강하고 인간 삶의 극적인, 드라마틱한 부분들을 추구하고 있거든요. ‘오월의 햇살’도 인간의 정서적 싸움이고, 지난번 공연한 ‘만선’도 그랬듯이 미움, 질투, 시기,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삶을 총망라하는 작품을 우선으로 선택하고 있죠.

미지애시어터는 비영리 단체로, 이번 ‘오월의 햇살’도 회당 출연진이 7인인 작품에 총 10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탓에 BEP(손익분기점)가 맞지 않는다. 상업 극단에서 이러한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같은 이유이기도 한데, 미지애시어터는 연극 무대에 뿌리를 둔 배우들의 조합인 만큼 앞으로도 희곡의 가치가 높은 작품이나 다양한 시도를 담은 작품으로 년 간 1회 꾸준히 공연을 올린다는 포부다. 그나마 예산이라는 것이 애초 없으니 사전 홍보와 같은 지출은 어림도 없다. 올해는 다행히 서울시의 공연업회생프로젝트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게 됐다.

정상훈 : 미지애시어터는 딱 1년에 한 번 공연하는 극단이거든요. 각자 활동하면서 1년에 한 번 헤쳐모이는 식인데, 따로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팀원 중 선배들이 먼저 각출해서 제작비를 꾸리고 티켓 수익이 발생하면 그를 제외한 나머지로 1/N을 하는 방식이라 사실상 남긴다는 게 어렵죠(웃음). 올해는 다행히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공연업회생프로젝트에 선정돼서 좀 수월하게 할 수 있었고요. 이번에 ‘오월의 햇살’을 재밌게 했으니까 내년 가을 쯤에 다시 재밌는 작품을 가지고 모이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단원들이 인간관계가 좋고 연기적인 성취감이 비슷해요. 또 다들 아이디어가 좋고, 모이면 뭐든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그렇다면 우리끼리 무엇에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모이게 됐는데, 이왕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좋은 연기자들이 모였으니 관객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자, 그런 사명감은 있죠.

 
 
 

이제 본 이야기로, ‘오월의 햇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을 5·18 민주화운동에 빗대어 각색한 이유는 무얼까.

정상훈 : ‘정의의 사람들’ 공연을 저도 두 번 정도 했었고, 다른 극단에서 일제 강점기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있긴 했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좀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해서 여러 소재나 환경, 사건 등을 좀 더 포괄적으로 자유롭게 만들 수 없을까 하는 데에서 시작했는데, ‘오월의 햇살’도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나이가 40대 중반들인데 ‘정의의 사람들’을 통해서 정말 답답한 것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울분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작품을 통해 풀어내면 어떨까. 사회의 합리적이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롭게, 거침없이 표현해보자는 데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연극 ‘오월의 햇살’은 극 중 테러의 대상이 누군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은 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정의의 사람들’을 관람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사건과 배경을 달리했을 뿐 원작이 지닌 문학적 힘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정상훈 : 이건 우리 미지애시어터의 전통이기도 한데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한 경우 지역이나 이름 등은 웬만하면 지칭을 안 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의 이름이라면 그냥 ‘아들아’, 지역이 대구라면 ‘아래 지방’ 등으로 표현하는 식이죠. ‘오월의 햇살’에도 광주라는 이야기나 테러 대상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그것을 작품에서 직접 말하는 게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인지, 관객이 스스로 알도록 하는 것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인지 생각했을 때, 우리 배우들의 선택은 굳이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100% 다 알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됐고, 원작이 가진 분명한 문학적인 힘이 있어서 아무리 소재를 80년대로 가져온다 한들 그것을 넘어서긴 힘들 것이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어요. 원작에 대한 배우들의 존경심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억지로 그것을 탈피하진 말자, 원작의 주제나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일부러 벗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이왕이면 원작을 충실히 따르자고 했던 것이 맞을 겁니다.

 

이번 ‘오월의 햇살’은 연출을 겸한 정상훈을 필두로 최영준, 안두호, 이진주, 노시아, 손인찬, 오세철, 김정환, 김준호, 강별 등 노련한 선배 배우들과 실력파 신예들이 대거 출연한다. 대부분 창단 멤버들로, 이후 ‘돌아온다’, ‘정의의 사람들’, ‘밑바닥에서’, ‘만선’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인연이 된 최영준, 김정환, 김준호, 강별 등이 속속 합류했다. 정상훈은 미지애시어터의 가장 큰 장점으로 ‘팀워크’를 꼽았다.

그중에도 최영준은 지난 9월 tvN 드라마 ‘악의 꽃’ 종영 이후 ‘슬기로운 의사생활2’, ‘빈센조’가 내년 상반기 방영 예정이어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번 ‘오월의 햇살’에 참여한다. 애초 ‘오월의 햇살’이 10월 공연 예정이었을 때는 다소 여유로웠다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공연일정이 변경되면서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앞서 연극 ‘만선’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지난해 ‘아스달 연대기’ 이후 ‘슬기로운 의사생활’, ‘악의 꽃’까지 출연작들이 줄줄이 성공하면서 뒤늦게 ‘포텐’이 터진 지금, 매체에 집중할 만하건만 좋은 작품의 출연의 의지가 강했던 이유다.

최영준은 ‘오월의 햇살’에서 원작의 주인공 ‘야네크’ 겪인 박영호 역을 맡았다. 우여곡절 끝에 테러에 성공한 인물이다. 다만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당연했던 그의 서사가 ‘오월의 햇살’에서는 다소 이해충돌을 일으킨다. ‘오월의 햇살’ 속 ‘그’는 현재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부를 누리고 있으니, 그렇다면 다시 ‘왜 5월의 광주인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또한, 민주항쟁으로 배경을 달리 했음에도 원작의 ‘혁명을 위한 테러’라는 주요 요소를 전면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관객이 이를 두고 어떤 평가를 하게 될지 배우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최영준 : 저도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지점 중 하나였어요. 사람을 죽인다는 게 절대 옳은 일이 아니고, 우리 민주항쟁의 역사에는 그런 방식은 없었으니까요. 해서 제가 의문을 가진 것과 같이 관객도 그런 의문을 갖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게 제 느낌이에요. 저도 처음에 대본을 볼 때 ‘테러’, ‘이건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을 했고 그걸로 계속 대본을 가지고 싸우다가, 이 작품은 인물들의 말 하나하나에 힘이 있어서 그들의 말을 따라가야 하는 작품이고 저는 그게 곧 고전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여기에 함몰되면 사람이 안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보는 사람의 몫으로 두고, 그 안에서 먼저 사람을 잘 만들어 놓자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누구의 의견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텐데, 가장 이상적인 관람이라면, 대표되는 특정 몇 단어 말고 어떤 의견을 가진 사람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상훈 : 저도 그렇게 보시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월의 햇살’은 ‘정의의 사람들’이 포커싱이라기보다 암울했던 격동기 80년대 광주, 그가 아직 살아 있음에도 당시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고 있고, 관련자들 모두가 침묵 속에 활보하는 그런 사회 부조리성에 포커싱을 잡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답을 내리기 보다 지금 우리시대의 관객들이 그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들의 바람이었어요. 카뮈가 얘기했던 것도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그것이 올바른 정의인가, 정의를 위해 그것을 실행하더라도 그래도 사람 목숨은 살려야 되지 않느냐, 그것이 올바른 정의 아니냐’ 그런 등등의 질문을 던질 뿐이거든요. 다만 대사 중에 ‘혁명’이라는 단어로 고민을 많이 했고, ‘민주화’, ‘투쟁’ 등으로 희석하긴 했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는 이제 공연을 올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고요. 어쨌든 제가 연출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연기적인 밀도죠. 배우들이 어떻게 하면 진정성을 가지고 각자의 인물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지, 어떤 앙상블을 그려내야 관객들에게 포괄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거기에 집중하고 있고 나머지 각색이나 보이는 부분들에서는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참여하고 있는데, 여러 아이디어들도 좋고 해서 아마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사진제공=미지애시어터

그들의 설명대로 실제 테러에 성공한 이들을 소재로 한 ‘정의의 사람들’에 5·18 민주화운동을 빗댄 점은 자칫 이질감을 불러올 수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유연한 시각과 다양한 관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흥미롭다.

한편, 미지애시어터의 일곱 번째 작품, 연극 ‘오월의 햇살’은 오는 11월 17일부터 11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서완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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