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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연극 '레드', 소멸과 창조 사이.."세상은 영원한 과정 중"
이은진  |  tvjnews@tv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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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2  03: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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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한 미술가의 신념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대교체의 고민과 어우러짐을 담은 연극 ‘레드’가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연극 ‘레드’는 색면추상의 대가로 알려진 화가 ‘마크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과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이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강렬한 논쟁을 통해 추상표현주의에서 신사실주의로 변화하는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을 그린다. 미국 작가 존 로건이 ‘마크 로스코’의 실제 일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두 남자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예술의 가치와 의미,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해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연극 ‘레드’는 2010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등을 포함해 연극 6개 부문의 최다 수상을 기록했을 정도로 탄탄한 작품성을 자랑한다. 지난 2011년 국내에서도 초연되어 현재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번 시즌에서는 ‘마크 로스코’ 역에 배우 강신일, 정보석이, ‘켄’ 역에 배우 김도빈, 박정복이 함께한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레드'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은 강신일, 정보석, 박정복, 김도빈이 번갈아 전막을 선보였고, 이후 취재진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왼쪽부터) 김도빈, 정보석, 강신일, 박정복

먼저, 초연에서부터 다섯 번째 ‘로스코’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 강신일은 “8년 전에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영광스럽게, 기쁘게 생각하고 덥석 받았는데 다섯 번째 시즌까지 오면서 이 로스코라는 인물이 내가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연습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 초연 때는 마크 로스코라는 인물이 가진 예술, 철학, 사상의 깊이를 이해하려고 많이 애썼고, 우리 대중에게는 생소한 분이라 이 연극이 관객들에게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말을 바꾸는 테이블 작업을 굉장히 길게 했다. 이후 시즌을 거듭할수록 초연 때 다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즐거운 작업이었다.”며 “사실 이번 시즌은 절대 안 하겠다고 굳게 맹세했었는데, 이 ‘레드’라는 작품이 자꾸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저 역시 소멸해가는 세대에 속해있는 사람이기도 해서 이번 시즌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좀 더 깊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매 시즌마다 다른 느낌, 다른 감정들이 있어서 굉장히 새롭고 재밌었다.”고 밝혔다.

강신일의 ‘로스코’를 본 후 작품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는 정보석 역시 어느덧 다섯 번째 참여다. 이에 정보석은 “저 역시 이번 시즌이 다섯 번째인데, 처음에 신일 형님이 공연하시는 걸 보고 홀딱 반해서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가 막상 하게 됐을 때 로스코라는 인물을 감당하기에는 제가 너무 초라했고 작았고, 첫 공연 때는 너무 힘들어서 연극에 대한 트라우마라 생겼었다. 해서 그동안 작품을 못 하게 됐다가 이후에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했을 때 다시 숨이 막히더라.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고 어려운 인물인데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때보다는 로스코가 뭘 고민했고, 무엇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는지 그것을 조금을 알 것 같다는 것. 그만큼의 느낌은 가지게 돼서 무대에서 조금은 숨통이 트인 상태로 하게 됐다. 해서 신일 형님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옆에서 많이 배우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며 낮은 자세를 보였다.

   
 
   
 

그런 어려움에도 연극 ‘레드’에 계속 참여하게 되는 매력으로 두 배우는 ‘로스코’와의 공감을 꼽았다. 미술과 연기라는 분야는 다르지만 오랜 시간 자신만의 신념으로 예술 활동을 해 온 이들의 공통적인 고민과 질문이었다. 먼저 강신일은 “50이 넘어가면서부터 나도 이제 서서히 물러나는 나이가 됐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언저리에서 ‘레드’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대본을 보면서 이 사람이 하는 말들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철학의 깊이, 방대한 지식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반면 이 사람이 당시 한 시대의 획을 그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또 새로운 세대들이 새로운 가치를 들고나오면서 그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을 김히 저의 모습에 비교하게 됐다. 나는 인정하지 않을 거고, 나이 먹어도 끝까지 무대를 지킬 거고, 그런 약간의 오만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런 오만함은 사라지고 로스코가 그린 그림들, 그것을 위해 많은 고민과 시간이 요구되는데 반짝거리는 그 순간은 너무 찬란한 것이고 연기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 해서 매 시즌마다 로스코가 했던 말을 새롭게 느끼게 되고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도 자꾸 로스코에 견주어보고 싶고,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이나 그들의 열정에 뒤처지지 않게, 그러면서도 그들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같이 나아가려고 스스로를 다지고 반성하고 공부하는 계기로 이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석은 “저 역시 비슷하다. 40대에서 50대가 되면서 한참 제 세대에 대해 고민할 때, 후배들은 한창 올라오고 저는 이제 어디에 서야 할지 제 자리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작품을 만나서 흠뻑 빠지게 됐다. 소멸하는 세대에 대한 공감이 로스코에게 강렬했고, 그럼에도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작품을 하려는 마음에 가장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계속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켄’ 역할로 세 번째 ‘레드’에 참여하고 있는 박정복 역시 작품 자체의 매력을 으뜸으로 꼽았다. 박정복은 “저도 처음에 ‘레드’라는 작품을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강신일 선생님과 강필석 선배님이 하시는 걸 보고 정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고, 세 번을 작업하면서 한 번도 흥미를 잃거나 재미가 없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이 무대가 항상 행복하고 즐겁다.”고 밝혔다.

김도빈은 이번 시즌에 첫 참여하게 됐다. “저는 바로 위에 있는 서울예술단에서 8년 정도 생활했는데, ‘레드’라는 작품의 포스터가 걸려있을 때 작품을 보진 못했어도 굉장히 매력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켜주지 않겠지.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시 측에서 연락이 왔더라. 처음엔 뮤지컬을 하라고 하려나 했는데 ‘레드’를 하자고 하더라.”며 “대본을 읽고 완전히 매료됐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웠다. 대본이 좋다고 배우가 연기하기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지금 매일 공연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연극 ‘레드’는 가장 크게는 레드, 거기에 블랙이라는 색깔을 상징적 의미로 사용하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배우들이 평소 갖는 레드의 이미지는 어떨까. 먼저 김도빈은 “이 작품을 하기 전에는 레드며 블랙이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레드하면 일단 열정이 떠오르고,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가 떠오른다. 저에게 레드는 열정인 것 같다.”고 말했고, 정보석은 “작품에서도 얘기하듯이 창조와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와 성숙에 동반된 열정, 제 이미지는 그렇다.”고 전했다. 이어 강신일은 “로스코가 고민했던 레드, 저에게는 연기가 아닌가 싶다. 연기를 통해서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본성, 잠재의식, 내 안에 감춰져 있던 것들을 찾아가고 끄집어내는 그런 면에서 연기라고 하고 싶다.”고 밝혔고, 또 박정복은 “저도 아직 레드라는 이미지는 열정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레드’는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술의 신념을 가진 ‘로스코’와 신진 예술가 ‘켄’의 논쟁을 통해 이전의,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올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스코’는 새롭게 태동한 ‘팝아트’ 장르를 미천하다 보고 여전히 자신의 예술에 그의 영혼을 담아두려 하지만 ‘켄’은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새로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로스코’에게 ‘켄’은 그의 편협하고 닫힌 세상을 당돌하게 지적하면서 변화를 종용한다.

이는 어쩌면 현시대와도 닮아있다. 진지한 의미보다 순간의 재미와 볼거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미디어 환경 변화의 바람을 타고 무대예술 콘텐츠에도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즘, 다행스럽게도 이 진지한 연극 ‘레드’는 탄탄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만들어내는 촘촘한 밀도가 관객들 사이 입소문을 타면서 시즌마다 많은 관객이 찾고 있다. 시의성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이번 시즌의 ‘레드’는 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까.

예술가로서 역시 오랜 세월 한 길을 고수해온 강신일과 정보석의 공감은 남달랐다. 연극 ‘레드’를 통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을 공감하고 그 안에서 신-구 세대의 어우러짐을 발견하기를 소원했다.

먼저 강신일은 “연극 ‘레드’는 미술을 소재로 한 연극이지만 미술, 철학, 신학, 인문학도 있다. 미술사만 얘기하더라도 어려운데 다른 분야까지 얘기해야 하니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저는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어려움은 나로서 족하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은 이 말의 무게에 치여서는 안 되겠다. 그렇게 전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연습을 반복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의 두 관계만 본다면 이건 다분히 신파적인 요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결국 신구세대의 조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로스코가 결국 켄을 인정하게 되지 않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가치관을 끊임없이 창출해야 하지만 앞선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가치관들을 묵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즌에 관객들이 이렇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이 연극이 하나의 음악 같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이 안에도 실제 로스코가 좋아했던 음악들이 나오는데 배우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사들과 음악이 하나의 이중주처럼 들렸으면 좋겠고,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용 같은 느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았던 음악과 다른 배우의 소리와 행동을 통해 음악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시즌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석은 “저는 한편으로, 바로 그런 부분들이 이 작품이 꼭 필요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세상은 영원한 과정 중에 있다고 작품에서도 얘기하듯이 그런 것들을 우리가 굳이 탓하고 두려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또한 하나의 과정인 거고 그 세대가 만드는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거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도 우리 것을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 우리 세대도 있다는 것을 같은 세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열심히 뭔가를 치열하게 해내면 그런 문화들이 부딪히면서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해서 우리가 우리 몫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의 생각들을 얘기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거고, 그러나 관객이 찾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때 불행하지만 그를 인정하는 것. 극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세대가 다르다고 적이 아니고 갈등이 전쟁이 아니라는 것. 같이 어우러지면서 흘러가는 건데,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런 어우러짐 만들어진다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이번 시즌도 열심히 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도 많이 와서 같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레드’ 장인들이 돌아온 다섯 번째 시즌, 연극 ‘레드’는 오는 2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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