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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초점]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 낯선..그러나 매력적인

  • 입력 2018.04.19 08:54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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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무대로 옮긴 극단 비밀지기의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이 최근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낭떠러지의 착각’은 다자이 오사무가 가명을 쓰던 시절에 쓴 단편소설로, 악재가 끊이지 않던 다자이의 비참하고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발표 당시 가명을 쓰면서까지 세상에 알려지기를 숨기려 했으나 편집자에 의해 뒤늦게 공개됐다.

작품 속 이야기는, 여름 방학을 맞은 ‘남자’가 삼촌이 말한 온천지로 여행을 떠나는데, 대작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그는 온천지에서 한 신인 작가의 이름을 사칭해 작가 행세를 하고 다니게 되고, 온천지의 사람들은 그를 진짜 신인 작가라고 믿으며 살뜰히 대접한다. 또한 ‘남자’는 사칭한 신분을 이용해 찻집 여종업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의 거짓말이 결국 참담한 사건을 부른다.

1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CJ아지트에서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신진호 연출, 고찬하 각색을 비롯해 출연진의 박철웅, 홍성민, 박상윤, 조수연, 김현호, 조혜안, 서지영, 민유리가 참석해 전막시연에 이어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극단 비밀기지에 의해 탄생한 이번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작품 속 당시 일본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간간히 등장하는 음악과 기모노를 입고 자근자근한 걸음을 걷는 여종업원들의 모습, 그들의 안무, 짧은 한 마디씩 등장하는 ‘스고이(굉장하다, 훌륭하다)’ 등과 같은 일본어는 극의 풍미를 더한다. 또한 가면, 나비모형, 스카프 등의 오브제의 활용이 뛰어나 이미지적인 볼거리도 뛰어나다. 다만 극 초중반, 비슷한 포맷으로의 상황 설명이 제법 길어서 다소의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후반에서의 몰입은 훌륭해서 ‘남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표출된다. 프레스콜을 통해 설명한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본다.

먼저, 일본 근대문학을 현 시점에 우리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신진호 연출에게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물었다. 이에 신진호 연출은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좋아하던 차에 다자이 오사무가 청춘에 관한, 어떤 자신의 트라우마나 개인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들이 많아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고, 주인공인 남자의 시점에서 청춘을 따라가다 보면 실패하는 시점들이 많다. 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영혼1,2가 그 서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관전 포인트라고 하면 결국 마지막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5년이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실패를 말하고 싶었고, 그럼에도 청춘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그 과정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찬하 각색은 “이 작품을 함께하게 된 건 연출님의 추천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불호에 가까웠다. 해서 왜 이 작품을 해야 할까, 작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작가의 전집을 다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사람이 가진 코드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자기혐오를 이야기한다는 것? 요즘 ‘자기혐오시대’라고 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그런 자기혐오 코드가 있어서 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스스로 숨기려고 하는 것들을 텍스트로 쓴다는 것이 되게 용기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해서 제 스스로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다. 또 다자이 오사무가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썼지만 원작에서는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꾸며 놔서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작품들의 텍스트를 최대한 참고해서 ‘이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입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각색의 포인트로 잡았다. 현재는 굉장히 두터운 팬층을 가진 인기작가의 가장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 보여지는 부분에서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음에도 간간히 등장하는 일본어는 다소 말장난과 같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낳게 했는데, 이에 대해 신진호 연출은 “처음에 이 작품으로 쇼케이스를 했을 때는 일본의 색채가 많이 없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소설 텍스트를 구현하다보니까, 생각보다 일본의 색채가 조금이라도 가미되면 그 색이 더 강하게 느껴지더라. 해서 (이번에는 좀 더 원작의 색을 크게 강조한 만큼), 개인적으로 장난스럽게는 아니었고, 그렇게 일본어의 언어감을 입힘으로써 일본이라는 색채가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에 사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신진호 연출은 “음악에 대한 포인트는, 사실 배우가 연기하기에 앞서서 묘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행동이 중요하게 들어가는 게 사실인데,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의 아름다운 말이나 자기 자신의 언어를 노래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고, 그것이 노래로 들어갔을 때 조금 더 색감이 짙어진 것 같고, 그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려고 했던 게 가장 큰 목표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작품에는 음악은 물론 배우들의 몸짓, 동작 등에서도 일본의 색채를 짙게 느낄 수 있다. 그를 준비한 과정을 배우들이 직접 설명했다. 먼저 ‘영혼2’역의 홍성민은 “작품에 연기와 춤이 많이 들어갔는데, 이 작품은 작가님 말씀처럼 혐오의 시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 갈등,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극의 우울감을 평화롭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해서 음악도, 춤의 역동성도, 움직임도 그렇고, 배우들과 비슷하게 고민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남자’ 역의 박철웅은 “연극으로 푼다고 하던데, 요소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런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대중들 앞에서 일본의 색채감이나 몸짓이 조금 더 가볍게 다가가기 위해 고민을 했던 것 같고, 음악이나 춤은 좀 더 대중적으로 가깝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신진호 연출은 “처음에 아름다운 극장에서 초연을 했을 때는 일본적인 색채를 가미하기 보다는, 그냥 안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일본적인 색채와 이미지를 가졌을 때, 무대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해야 되는지 많이 토론을 했었다. 안무감독에게 일본식의 걸음걸이와 몸짓, 행동 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보컬 지도를 해주시는 조훈 배우는 일본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서 일본식 창법이나 습관 등에서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키’역을 맡은 조수연은 “남자와 영혼1,2를 연기하는 배우들보다 저와 종업원을 연기하는 여자배우들이 일본식 안무와 노래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저는 그 안에서 그 진심을 어떻게 담아서 표현을 할지 가장 중점을 두었고, 그런 일본의 색을 연구하고 공부를 하면서 역할 연구에도 더 많이 도움이 됐던 거 같다.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더불어 ‘영혼1’역의 박상윤은 “초연에서는 일본적인 색채를 많이 배제하고 공연을 했었다. 의상도 기모노가 아닌 평범한 의상이었고, 일본어도 다 뺐었다. 물론 그럼에도 일본의 느낌은 났다고 믿지만 그걸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칫 무대도 그렇고 한국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서 일본적인 색이 더 가미되면 어떨까. 해서 연습 중에 기모노 의상이나 일본어도 넣게 됐고, 연출님 자체가 연극성을 강조하는 분이어서 사실성을 기피했었다. 해서 기모노를 입는 것을 고민했지만 다자이 오사무를 좀 더 관객들이 잘 느낄 수 있게끔 하길 바랐다.”며 “저희 팀 자체가 트렌드나 선호를 따라가지 않고 저희  팀만의 목표와 탐구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혹시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면 좀 서운하지만 나름 젊은 팀이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나아가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다소 풀리지 않는 부분은, 극단 비밀기지가 이번에 선보인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연출기법이나 장면의 생동감, 사실적이거나 몽환적인 이미지의 표현이 뛰어나다. 그렇다보니 이왕이면 호불호를 줄일 수 있는 우리 실정으로의 각색은 어려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에 신진호 연출은 이번 작품은 원작의 색채와 다자이 오사무를 보다 완벽하게 표현할 방식으로 ‘보다 일본식’을 택했다는 것. 그러나 앞으로 우리 대중들이 선호할 수 있는 현대적 각색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진호 연출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적 배경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었고, 아직 가장 기초단계이기 때문에 텍스트에 내제되어 있는 시대적 배경이나 사실 관계에 기초를 두고 싶었다. 각색을 할 때도 현대적인 언어로 가져오는 것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리서치 작업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런 작업을 통해서 좀 더 여기에서 드러날 수 있는 연극성이 무엇일까를 탐구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더 넓게는 바라보지 못했으나 저희가 가진 것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이 든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현대적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풀어볼 생각도 있고, 오히려 다자이 오사무의 기초적인 줄거리, 서사를 가지고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더 발전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신진호 연출은 “CJ문화재단에서 선정돼 공연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연을 올리는 3주를 계기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차세대 창작시스템을 발판으로 ‘낭떠러지의 착각’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나아갈 수 있는 큰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희 팀을 항상, 길게 지켜봐주시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다.”라고 전했고, 고찬하 각색은 “젊은 극단이다 보니까 실험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우리의 현실 자체가 연극과 닮아있다는 모토를 가지고 계속 실험을 하는 극단이어서 피드백을 듣고 고치기도 하고, 발전해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저 역시 제 대본이 완성된 작품을 올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의 시 같은 경우도 배우들에게 맡겼는데, 무대를 밟아봤을 때 각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것을 가지고 마지막의 시를 배우들에게 맡겼던 거고, 실험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언도 해주시고, 더 나은 작품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극단 비밀기지의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일본식 색채가 강하다는 면에서 더러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를 배제하고 온전히 연극 작품으로만 보자면 훌륭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큼, 젊은 극단의 색다른 작품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한편, 연극 ‘낭떠러지의 착각’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CJ아지트에서 오는 4월 29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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