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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낯선 감흥을 즐겨라.

  • 입력 2017.01.11 02:54
  • 기자명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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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뉴스=이은진 기자] ※ 본 리뷰에는 공연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있음을 알립니다.

서거 400주년을 맞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돌연변이와 인간의 사랑으로 각색되어 김수로프로젝트 20탄으로 탄생했다.

이번 창작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큰 특색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주 골자로 한다는 점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핵전쟁 등의 이유로 문명사회가 복구불가한 지경의 파괴에 이른 암울한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를 일컫는데,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지하철 카풀렛 역에 살아남은 유일한 인류와 원인미상의 오염으로 탄생한 돌연변이들의 치열한 생존을 담았다.

죽고 죽이는 것만이 종족의 유일한 살 길이니 그들의 세상에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만이 들끓는다. 말하자면 원작 속 지긋지긋한 원수 집안 캐풀럿과 몬테규 가문이 뮤지컬 세상에서 보다 극적인 금단의 영역으로 돌아온 것.

이러한 종족 간 갈등은 인간 티볼트와 돌연변이 머큐쇼로 대변된다. 과거 돌연변이에 의해 아내를 잃은 티볼트는 동료의 죽음이 또 하나의 도화선이 되어 몽타궤 역 돌연변이들과의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 돌연변이의 리더 머큐쇼는 인간과의 전쟁을 끝내고 돌연변이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강의 전력이 되어줄 친구 로미오를 설득하는데, 과거의 전쟁으로 형을 잃은 로미오는 오히려 더 이상의 전쟁에 회의적이다. 인간을 잡아먹은 것을 무용담처럼 떠드는 돌연변이들 속에 그는 어쩌면 또 다른 돌연변이일지도.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순수하고 밝은, 호기심 많은 소녀 줄리엣이 나타나면서 원작의 비극이 다시 시작된다.

▲ 드디어 본 공연의 시작, 프리뷰와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장 큰 변화는 ‘안정’이다. 프리뷰 기간을 지나면서 배우들은 각자의 연기나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에서도 보다 안정된 느낌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각 신이 가진 대립, 갈등, 로맨스 등의 감정선이 한층 강화된다. 또한 줄리엣이 2층 난간의 작은 발판 위에 서서 노래를 하던 아슬아슬한 모습이 사라졌다. 그렇게 자세가 안정된 때문일까, 배우의 노래가 보다 매끄러워지고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더불어 돌연변이 로미오의 문제적 가부키 분장은 멋드러진 스모키 메이크업과 돌연변이를 상징하는 문양(?)을 뺨에 새기는 것으로 대체됐다.

프리뷰 기간에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던 음향과 관련해서는 MR이나 효과음이 너무 커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가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이 음향에서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MR의 소리 자체가 다소 건조하다는 것이어서 배우들의 목소리와 어우러진 전체 사운드 밸런스에 미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모든 음악은 소리에 적절한 포근함을 가지고 있어야 음량을 증폭했을 때에 귀를 막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엔딩에서 비극의 극대화를 노린 백 사운드에서조차 신의 여흥을 돕지 못한다는 점은 실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짱짱한 성량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붙는 신에서는 더불어 울어대는 스피커의 잡음을 감내해야 한다.

이는 결국 음악 자체의 퀄리티를 물리적 효과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허수현 작곡가에게서 탄생한 중독성 강한 넘버들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큰 자랑이기도 하다.

▲ 먼저 맞는 매가 낫다? 아쉬운 점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큰 아쉬움은 개연의 부재다. 그렇다보니 엉뚱하게도 티볼트와 머큐쇼의 이른 퇴장에 더할 수 없는 미련이 남는다. 이는 배우들의 역량이 보다 뛰어나서이기도 하겠지만 두 인물은 이 작품의 특징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어서 원작과의 차별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들로 하여금 쫀쫀하게 유지된 텐션이 그들의 퇴장으로 급작스럽게 무너진다.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의 완성을 위해 엇갈린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이 그려지면서 ‘이야기’로 치중되지만 개연이 부족한 그들의 로맨스는 어느 한 구석 공허함을 부른다.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희생된 오빠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로미오를 향하고, 로미오 역시 줄리엣의 오빠를 죽였음에도 정작 그들의 재회에서는 그로인한 결정적 갈등과 화해가 삭제되어있다. 이후 두 사람의 마지막 재회에서의 포커스는 오로지 서로의 종족이 뒤바뀐 현 상황, 그럼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노라 말할 뿐이다. 그렇다보니 결국 티볼트와 머큐쇼의 싸움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스를 완성하는 극적 장치의 역할에서는 동떨어진 채 또 한 번의 무의미한 전쟁(죽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불어, 그런 로미오와 줄리엣만으로 티볼트와 머큐쇼가 이미 한 차례 폭풍처럼 휩쓸고 간 무대를 채우기엔 다소 역부족이다. 특히 두 주인공의 로맨스를 대표하는 일부 넘버는 1막에 이어 2막에 재차 등장하는데 분명 다른 감정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다른 의미의 '새로움'에는 미치지 못해 라스트로 치닫는 감흥을 돕기엔 다소 밋밋하다. 또한 일부 넘버는 이미 배우들의 역량을 뛰어넘고 있어 관객들은 그 버거움을 눈치 채는 것이 어렵지 않다. 창작 뮤지컬의, 더구나 초연인 만큼 출연 배우들의 음역대를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 그럼에도 평점 ‘8.0’ 낯섦은 새로움의 또 다른 이름.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큰 자랑은 온갖 돌연변이가 들끓는 세상으로 배경을 옮긴 각색이다. 이미 그 하나만으로도 한번쯤 꼭 볼 만한 작품으로 추천할 수 있겠다.

그에 따라 무대 위 세트, 음악, 분장, 색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이 원작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강렬한 새로움으로 재탄생했다. 실상 철제 구조물의 단 세트 구성임에도 영리한 조명의 분배로 배경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인물의 위치를 보여주고 때로는 인물들의 심리를 도와 더욱 극적인 효과를 만든다. 특히 원작에서의 아름다운 발코니 신은 폐허가 된 도시를 비추는 한가로운 달빛이라는 극명한 대조로 현대적 감각의 스타일리시함을 더했다.

앙상블과 함께한 역동적인 안무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또 다른 자랑이다. 강렬한 록 비트에 맞춰 흡사 좀비와도 같은 분장을 한 돌연변이 떼가 기교한 몸짓으로 무대 전체를 휘저을 때는 실로 호쾌한 장관을 이룬다. 특히 로미오가 줄리엣을 지키기 위해 같은 돌연변이들과 대치하며 벌이는 추격전이나 티볼트와 머큐쇼의 ‘한쪽이 끝나야 끝나는 싸움’ 등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더불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누굴까’, ‘인간 흉내’와 같은 장면에서는 감미로운 넘버와 함께 아련하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다수의 작품을 섭렵한 관객이라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몇 작품이 뇌리를 스칠 수 있다. 허나 그것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라면 그 역시 그들만의 새로움의 한 축으로 보아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에 나아가, 낯선 감흥을 새로움으로 즐길 수 있다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또 하나의 회전문을 만나게 될 수도.

한편, 조풍래, 보이프렌드 동현, 고은성, 한서윤, 김다혜, 전예지, 김수용, 김종구, 박한근, 이용규 등이 출연하는 김수로프로젝트 20탄 창작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오는 3월 5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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