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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화원 곰배령

  • 입력 2012.09.07 20:17
  • 기자명 유형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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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을 처음 간 것은 15년전 한 오지여행가를 알면서 부터이다. 그 뒤 계획을 세워 곰배령을 간 것은 불과 얼마 뒤, 그 때 처음 방문 때도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차가 비포장 도로를 갈때는 머리가 차 천장에 부딪칠 정도의 오지중 오지였다. 등산로도 험하디 험하고 강선마을 가는 길조차 녹녹치 않았었다. 강선마을 도착해 보니 특이 한건 스텐레스 김치통을 계곡물에 담가 천연냉장고를 쓰고 있었고, 곰배령에 도착할 때 까지 우리 빼곤 거의 사람을 못봤을 정도 한적했다.

그 뒤 4년전에 다시 갔었다. 그때도 비가 흩뿌리는 길을 호젓하게 걸었었다. 그 땐 인터넷예약도 없었고 민박집에서 자면 등산로 초입까지 안내했었다. 물론 길은 많이 좋아졌었다.

 

드리고 이번이 3번째, 곰배령은 이제 숨은 오지가 아니었다. 거의 마을 다 갈 때까지 포장된 아스팔트, 시원스레 닦여있는 주차장, 입구에 즐비한 민박집, 거의 관광지나 유원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선마을까지 힘겹게 걷던 지난날의 모습은 이젠 멀리 한켠의 추억으로 묻어버리고 그 길을 시원스런 넓은 길이 남녀노소를 구분 않고 푸근하게 품어 안는다. 

여느 등산로나 유원지 같이 들어선 음식집에선 시원한 막걸리로 유혹을 하고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간 등산객들이 벤취 한쪽에서 졸고 있었다. 이게 지금 곰배령이 처한 현실이다.

 현리를 거쳐 방태산 휴양림을 지나 모퉁이를 도니 갑자기 답답하던 골짜기가 환하게 뚫린다. 쇠나드리이다. 원래 이 마을에는 다리가 세개 있어 `세나드리'라고 불렀는데 차츰 `쇠나드리'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15년 전에 갔었을 때는 말뚝에 매어 놓은 소가 바람에 날려 들고 날 정도로 골짜기의 바람이 하도 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들었다. 어느 게 맞는 지는 중요치 않다. 15년 전의 가을과 같이 지금도 억새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또 거친 바람 때문에 한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하고 바람등살에 못이긴 나무들은 다 키가 작다.

 비포장도로를 더 달려 도착한 점봉산생태지원센터, 10일 만에 제일 좋은 날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주차장관리원 말을 뒤로 한 채 들어서니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주차장에 어느새 차가 빼곡하다. 이곳이 근래에 입소문과 매스컴 영향으로 유원지나 관광지로 잘못 인식되어 훼손 우려가 보이는 현실에 조마조마하다. 또 말이 200명 한정 입산허가제이지 실제로 진동리 민박집에서 자는 사람은 누구든 입장이 가능한 표찰을 나눠주기 때문에 100여명의 추가 입장이 가능한 것이다. 

입산허가증을 걸고 그늘 속으로 들어서니 금방 서늘한 냉기가 몸을 휘감고 돈다. 천상의 화원 곰배령 오르는 길은 완만하여 애들도 오른다. 코 속을 자극하는 야생화와 싱싱한 숲이 심신이 지친자를 자연 치유한다. 천상의 화원과 구름 속 선계를 보여주는 곰배령은 내설악 점봉산 남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국내 최대 야생화 군락지다. 

이내 이어진 길은 넓게 정비 되어 조그만 꼬마 애들부터 노인분들 까지 쉬게 걸어 갈 수 있는 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유독 가족단위 탐방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젠 더이상 곰배령은 숨은 마지막오지가 아니었다. 그리 되기까지는 너무 인공이 가미되었다. 그리고 여행사들이 앞다퉈 ‘천상의 화원’운운하며 모객을해서 대량으로 사람을 풀어 놓은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래도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지는 않는 듯 이곳저곳에 막 피기 시작한 금강초롱이 널리어 있다. 15년전에 금강초롱을 처음 접하고 나서의 감흥은 내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어수리,물봉선,참나물,눈빛승마등의 꽃이 어우러진 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지만 전에 탐스럽던 금강초롱은 환경이 많이 달라져서인지 기대하기가 어려웠으나 지금도 그 귀한 금강초롱을 지척에서 보니 환경보전 문제가 시급하다. 길옆에는 늪지에서나 보던 속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시원한 물소리와 이마에 송송 땀방울이 맺힐 즈음 도착한 강선마을, 그곳도 더 이상 오지가 아니었다. TV를 시청하기 위한 파라볼라안테나가 세워져있고 옆을 흐르는 개울도 더 이상 냉장고 역할을 할 필요가 없는지 더 이상 물에 담궈 논 김치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곳 몇집은 상점으로 변해 시원한 막걸리와 파전의 향으로 지나가는 산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강선마을을 벗어나 징검다리를 건너 올라서자 바로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등산로라야 뭐 약간의 오르막과 조붓한 산길이 전부이다. 길 주변은 쥬라기 시기의 공룡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듯한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밑으로는 고사리과 양치식물인 관중이 빽빽하게 밀생을 하고 이끼가 간혹 튀어나온 바위에 새파랗게 자라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등산로 옆으로는 계속 계곡이 따라 붙어 시원스런 폭포수를 쏱아내고, 그렇게 몸이 더워질 무렵 약간은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니 앞이 탁 트인다. 공배령 정상이다. 곰배령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벌떡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해발 1100미터 고지에 약 5만평의 평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철따라 만발하여 마치 고산화원을 방불케 한다. 

멀리 보이는 산 정상부근에는 구름이 한가로이 노닌다. 갑자기 햇볕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가하던 정상이 분주하다. 빛을 받은 초원은 각종 꽃들이 경연을 펼친다. 둥근이질풀, 투구꽃, 마타리꽃, 꼬리풀, 고려엉겅퀴, 이제는 마지막 빛을 발하는 동자꽃, 참취들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나비와 벌을 유혹하고 있다. 

하산길이다. 정상부에서의 뜨거운 햇볕과 마주하다 불과 열발짝정도 내려왔을까 시원한 기운이 폐부를 싸고 돈다. 상쾌함에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나 가볍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던 사건이 있었으니.... 

한무리의 등산객이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도 그 무리 옆에서 간식을 먹었다. 그런데 그 일행이 막걸리 몇 병을 꺼내 서로 돌리더니 그 일행의 아주머니가 거절하는데 자꾸 권유를 한다. 그런데 얼떨결에 막걸리 한잔 비운 아주머니 간식 먹는 사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버렸다. 아무리 술 권하는 사회라 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우리는 그냥 그곳을 벗어났다. 우리 행락문화와 더불어 음주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낮 주차장 기온은 뜨겁다. 하긴 아무리 강원도라도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으니. 냉커피 한잔으로 몸을 식히고 서울을 향한 장도의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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