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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대한 성찰,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조. 임권택 감독의 숭고한 영화 <화장>

  • 입력 2015.03.17 23:01
  • 기자명 남궁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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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투데이 남궁선정 기자]
  영화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으로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김훈의 소설 『화장』을 원작으로 한다. 김훈 작가의 『화장』은 모든 소멸해 가는 것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존재 의미를 냉혹하고 정밀하게 추구한 대작으로 평가 받은 작품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은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生과 死를 관조한다. 화장품 회사 중역인 오상무(안성기)는 암을 투병하는 아내 진경(김호정)의 헌신적인 남편이자 충실한 간병인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부하직원 추은주(김규리)를 담고 있다. 아내의 병수발과 고단한 업무의 틈새에서 오상무는 추은주의 젊고 아름다운 몸을 상상하곤 한다.
  회식 후 택시를 탄 오상무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추은주를 발견하고 택시를 돌려 그녀가 걸어가는 길로 빠르게 향하지만 길이 그녀와 마주치지 못한다. 허탈한 마음을 감춘 채 병실에서 잠든 오상무는 생기발랄한 모습이 등장하는 추은주의 꿈을 꾼다. 옆에 있던 아내는 오상무에게 자기가 얼마나 아픈데 나 두고 잠이 오냐고, 내가 어서 죽었으면 좋겠지 하며 화를 낸다.    아내의 장례식장, 결재서류를 가지고 온 부하직원들과 출시를 앞둔 신규 화장품의 광고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도 오상무의 신경은 까만 바지 정장을 입고 문상을 온 추은주에게 향해있다. 한편, 오상무의 추천서 덕분에 원하던 중국지사로 발령이 난 추은주는 감사인사를 전하고자 고기리에 있는 오상무의 별장으로 찾아오겠다는 문자를 남기는데...
  영화는 첫장면부터 강렬하다. 상여가 나가고 하얀 모래언덕위로 검은색 상복을 입은 유족들이 상여의 뒤를 잇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상무의 아내가 죽을 것임을 처음부터 암시한다. 영화는 점점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한 여성과 그녀를 바라봐야 하는 남성, 그리고 여성으로서 절정을 향해가고 있는 한 여성을 통해 인생의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모든 인간의 감정이 모두 녹아있다. 기쁨, 슬픔, 사랑, 좌절, 열정, 꿈, 욕망, 그리고 살아있음과 죽어가는 것에 대한 인간존재 본연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아있다. 영화 속 오상무는 열심히 일하며 대외적으로는 성공한 중년남성의 이미지를, 추은주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 담당함을, 아내는 병으로 인해 모든 욕망을 죽인 채 오로지 죽음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절망의 감정을 대변한다.   오상무는 일에 대한 평판도 좋고, 부하직원들에게도 상사로서 높은 덕망을 칭송받는다. 하지만 낮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한 중년남성이지만 하루일과과 끝나면 아내가 입원해있는 병원에서 모든 욕망을 죽이며 살아간다. 아내는 여자라는 모든 존엄을 버리고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두 치부를 드러내며 삶에 처절하게 좌절한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다. 오상무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생활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이 주는 생생한 매력을 가진 추은주에게 자꾸만 눈이 간다. 정신적 유혹에도 오상무는 내면의 욕망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 새어나갈 틈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아내의 오물을 씻어내는 그의 손길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일 뿐이지만 그는 아내의 병간호에 한치의 소홀함도 없다. 아내가 떠나갈 때까지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간호를 했는지, 남편이라는 의무감으로 아내 곁에 머물렀는지 도무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별장에 내려와 아내의 물건을 정리하는 와중에, 오상무는 낡은 지갑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사진 한장을 보며 그는 죽어버린 기억을 상기한다. 아내를 사랑했었던 옛사랑과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사이에서 갈등한다. 남겨진 삶의 흔적, 그리고 앞으로 새겨나가야 할 새로운 삶의 흔적 사이에서 오상무는 갈등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현재 '오락성'을 내세운 한국 영화계에 잔잔한 파문을 던진다. 거장의 영화는 언제나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고통을 자극적으로 스크린에 투영하기보다는 절제된 인간 감성을 보여주며 인생과 인간존재를 관조하게 만든다.
  고즈넉한 밤, 피어오르는 화톳불의 연기를 보며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게 임권택 감독이 가진 장엄한 힘이 아닌가 싶다. 생에 대한 성찰,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조. 임권택 감독의 숭고한 영화 <화장>은 4월 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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