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을 받고(2002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2004년)을 수상한 바 있는 세계적 소설가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Chronicle of a Blood Merchant)를 원작으로 하정우가 주연과 연출을 맡은 영화 <허삼관>은 가진 것은 없지만 가족들만 보면 행복한 남자 ‘허삼관’이 11년간 남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때는 1953년 충남 공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전쟁의 피해 복구로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기 시작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건물을 짓는 공사현장, 남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틈, 강냉이를 파는 옥란(하지원)은 공사장 모든 남자들의 우상이 되고, 그런 옥란에게 한눈에 반한 삼관(하정우)는 옥란에게 물량공세를 투입하며 옥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삼관은 거의 한달치 월급에 맞먹는 피를 팔아 옥란에게 만두, 불고기, 냉면, 향수를 사주며 결혼을 하자고 설득하며 결국 옥란의 아버지(이경영)마저 설득해 옥란과 결혼에 성공한다. 그리고 11년 뒤 1964년, 삼관과 옥란 사이에는 세 아들 일락(남다름), 이락(노강민), 삼락(전현석)이 있어 하하호호 즐거운 가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큰아들 일락이 옥란의 옛연인 하소용(민무제)를 닮았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고, 삼관은 일락을 시켜 동네의원에 가서 혈액형 검사를 하고 오라고 이른다. 혈액형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 삼관은 동네주민들 앞에서 일락이 자신의 친아들이라는 증거가 도착했다고 큰소리를 떵떵치지만 들어맞지 않는 혈액형은 일락이 삼관의 친아들이 아님을 잔인하게 알려준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삼관은 옥란을 윽박지르고, 11년간의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며 뒤끝작렬, 밴댕이 속마냥 온갖 성질로 아내와 일락을 뒤집어놓는다. 삼관은 일락에게 '아저씨'라 부르라고 하고, 하소용을 찾아가 '아버지'라 부르라고 시키기도 한다. 그런 괴로운 일상이 흐르던 중, 일락은 어느 날 갑자기 밭에서 쓰러지며 뇌염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게 된 일락의 소식을 들은 삼관은 치료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공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여정 내내 '피를 팔아가'며 일락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생과 사를 다한다... 하정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허삼관>은 영화가 2개의 파트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준다. 삼관이 옥란과 결혼하기 전, 삼관과 옥란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일락이 삼관의 친아들이 아니고, 일락이 뇌염으로 쓰러지자 영화는 갑작스레 무거우면서 감동의 휴면드라마를 방향을 바꾼다.
한국전이 끝난 직후, 폐허에서 일구는 삶의 터전, 먹고 살기 위해 뼈빠지게 가족을 부양했던 그 시절. 언뜻 어려운 시절이지만 영화의 첫부분은 코믹함을 잃지 않는다. 이는 삼관이라는 캐릭터가 시종일관 희극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기 때문으로, 삼관은 한눈에 반한 옥란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에게 당차게 "언제 저한테 시집오실 거에요?"라고 묻는다. 영화의 중반부터는 삼관과 일락사이에 진하게 녹아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父情)에 관해 집중한다. '종달새의 왕'이라고 불릴지언정 삼관은 일락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말 그대로 온 몸을 바친다. 피를 뽑은 후 일주일 이상은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공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삼관은 온 몸의 피를 팔아가며 일락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쓴다.
영화는 일락을 위해 애쓰는 삼관을 보여주며 아버지와 아들의 부정(父情)과 어렵게 살던 그 시절 피를 팔아가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아버지의 희생을 집중조명한다. 그리고 그런 가장 밑에서 묵묵히 제 할일하며 가정을 지키던 어머니의 존재도 부각시킨다.
원작의 제목처럼 피를 팔아가며(매혈기) 가족을 지키던 아버지의 희생과 온갖 어려움에도 남편을 내조하며 끝까지 가정을 유지했던 어머니의 내조. 배우이면서 영화의 연출을 맡은 하정우 감독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 <허삼관 매혈기>는 1월 14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