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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한 임금, 자신의 첫번째 백성을 마주하다 - 뿌리깊은 나무 1~2회

드라마 리뷰: 뿌리깊은 나무 1~2회

  • 입력 2011.12.26 11:25
  • 기자명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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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한 임금, 자신의 첫번째 백성을 마주하다


기대한 만큼 정말 많이 기다렸고, 기대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서 본방 보고 급짜식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게 웬걸. <뿌리깊은 나무>는 첫회부터 너무 흥미진진 재미있었다. -알바 아닙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화려한 캐스팅과 함께 24부작 드라마로 재탄생 되었고, 드라마는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등장인물들의 먼 과거 이야기를 탄탄한 구성으로 그려내며 명쾌한 스타트를 끊었다. 덕분에 <공주의 남자>의 이렇다 할 후유증도 느끼지 못한 채 바로 열혈 닥본사 모드에 들어갈 기세.

<뿌리깊은 나무>는 딱 첫 주 방송 분을 통해 주인공들의 포지션과 향후 노선 방향을 확실하게 정했다. 유약한 어린 임금 이도(송중기)는 피 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정치를 하는 아버지 태종(백윤식)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도는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고 꺾어버리는 아버지의 스타일을 절대로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절대 못한다. 왕위에 오른 건 본인이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건 상왕인 아버지이고, 자신은 그런 아버지에게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마방진에만 몰두했다.

이랬던 이도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첫번째 백성인 한짓골 똘복이(채상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똘복은 ‘심온 옥사 사건’ -요약하자면, 세종의 장인이었던 심온의 세력이 커지는 걸 태종이 견제한 일- 으로 인해 유일한 가족이고 전부였던 아버지를 잃는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같이 지내던 다른 아저씨들마저 모조리 다 죽임을 당했다. 이 모두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처럼 <뿌리깊은 나무>는 ‘마방진’과 ‘밀지’를 통해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마방진이 태종과 정 반대인 이도의 정치철학을 나타냈다면, 밀지는 세종이 백성을 제대로 돌아보고, 백성을 위해서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는 셈. 몇 번이고 실패하지만 33방진을 보면서 어떻게든 조화를 맞춰서 이뤄내려는 이도의 모습에서 ‘분산된 왕권+재상 정치’를 지향하는 세종의 방식을, 숫자 패들을 모조리 다 치워버리고 정 가운데에 숫자 1만 놓고 해결하려는 태종의 모습에서는 ‘강력하게 집중된 왕권’을 지향하는 태종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밀지에 쓰인 한자를 읽을 줄 몰라 벌어진 백성들의 억울하고도 비극적인 참사는 드라마의 핵심 내용이기도 한 ‘세종이 어떻게 백성들을 위할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그의 조선에 대한 이상과 신념을 어떻게 키워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동시에 ‘훗날 겸사복 강채윤(장혁)으로 성장하는 똘복이 왜 세종에 대한 원망으로 똘똘 뭉쳐 있는지’ -세종이 밀지 셔틀만 안 시켰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의 원수)-, ‘훗날 궁녀 소이(신세경)로 성장하는 담이가 어떻게 말을 잃고 궁에 들어가 세종을 돕는지’ -글을 몰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응어리진 한(恨)- 를 설명하며 ‘이와 같은 사건을 기점으로 이들이 세종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는 점을 아주 깔끔하게 엮어냈다.

결국 <뿌리깊은 나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글’이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문자는 곧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법적으로는 신분 제약이 없었다지만 실질적으로 양민들이 문신이 되기 위한 과거를 치룰 수는 없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했던 백성들이 어느 세월에 말과 동떨어진 어려운 한자를 배울 수 있었을까. 지금 쓰고 있는 한자를 백성들에게 알려주자니 그건 너무 비실용적이고, 또 기득권층의 반발도 엄청 거세고 만만치 않았다. -그 반발을 이 드라마에서는 ‘집현전 학사 연쇄 살인 사건’으로 그려낼 예정- 그래서 백성을 긍휼히 여겼던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아예 新권력인 ‘한글’을 만들어 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로 이 배경 스토리를 이야기 하는 드라마다. 할 이야기와 보여줄 것이 많아 24회가 빠듯하게도 느껴지지만, 왠지 잘만 하면 위대하고 멋진 임금 세종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두근두근 설렌다.

 


│여담

1. 이런 디테일 진짜 좋다.

<뿌리깊은 나무> 처음에 나오는 화면들. 처음에는 몰랐다. 다시 보니 ‘하나’, ‘둘’이더라. 어느 드라마에나 나오는 자막이 아닌 이런 디테일 너무 멋지다!

2. 청년 이도가 생각보다 너무 매력적이라서 또 끙끙 앓는 중.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보니 한석규 세종도 멋져 보여서 하반기를 ‘세종앓이’로 마무리하게 될 것 같다. 이제 타임 워프 전환만 잘 되면 바랄 것이 없다!
3. 그런데 청년 이도도 이도지만 조선제일검 무휼(조진웅)도 완전 멋지다. “무사~~~ 무휼!!!”
4. 아역배우 연기 관련해서 말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덤덤하게 봤다. 매 씬마다 악에 받쳐 있는 애를 보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똘복이가 그 어린 나이에 그런 독한 구석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아버지를 지키며 버텼을까 싶어서 안쓰럽기도 했고 말이다.
 

 

 

※ 본 컨텐츠는 토끼풀(TalkyPool) 공식 블로그에서 제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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